[세종=뉴스핌 이진성 기자] 강원도 원주와 충북 제천에서 C형 간염 환자가 무더기로 발생하자 보건당국이 의료기관에 대한 처벌규정을 강화하겠다고 내세웠지만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의료법 개정을 통해 면허취소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중대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의료기관이 처벌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12일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의료기관에서의 C형 간염 확산을 막기 위해 1회용 주사기 재사용에 대한 관리 및 처벌을 강화한다. 의료법 개정을 통해 의료기관에서 1회용품 재사용으로 인해 중대한 위해가 발생한 경우 형사처벌 규정을 신설하고 면허취소 방안도 검토한다는 것이다.
C형 간염 개요.<자료=보건복지부> |
C형 간염은 주로 오염된 침과 바늘, 면도기 등을 통하거나 문신과 귀뚫기, 혈액을 공급하는 의료기기 등을 통해 감염된다. 때문에 1회용 주사기를 사용하는 현대 의료체계에서 C형 간염이 발생한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의료계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보건당국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 의료법 개정을 통해 처벌 강화를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규정으론 사실상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사실상 보여주기식이란 지적이다.
보건당국은 처벌 규정 문구마다 '중대한'을 붙였다. '의료법상 1회용품 재사용으로 인해 중대한 위해가 발생한 경우', '불법 의료행위로 인한 중대한 위해가 발생한 경우' 등이다. 문제는 '중대한'의 범위를 지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같이 애매한 규정을 만든데에는 보건당국이 의료계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해 다나의원에서 집단 C형 간염이 발생했을 당시 의료인 면허를 취소하는 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대한의사협회는 "상황은 심각하지만 의료면허를 취소하는 것은 가혹하다"며 선을 그었다. 환자의 생명보다 의료면허가 중대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보건당국은 다나의원에 이어 원주와 충북에서도 최소 115명이 C형 간염에 노출되자 의료인 단체를 최근 긴급 소집했다. 대한병원협회와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간호사협회 등이 참석했다.
당시 자리에 참석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는 의료인 면허 취소 같은 민감한 방안은 논의되지 않았다. 그는 "보건당국이 스스로 한발 물러나 '중대한'이라는 단어를 추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이번 C형 간염 사태도 지난해 4월부터 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늦장대응의 책임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10개월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막상 사태가 심각한 단계에 이르자 뒤늦게 보여주기식의 대응을 해온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보건당국 관계자는 "당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사를 준비하다보니 조치가 늦어진 점은 있다"고 답했다. 처벌 규정에 대한 지적에는 "상황이 발생하면 심사위원들이 중대한의 기준을 정할 것"이라고 했다.
[뉴스핌 Newspim] 이진성 기자 (jin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