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선엽 기자] 8년 주기로 반복되는 SK텔레콤의 대형 인수합병(M&A)를 두고 공정거래위원회가 깜깜이 심사를 이어가자, 공정위가 또 다시 1위 사업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특히 과거에도 공정위가 합병을 승인하면서 몇몇 조건을 내걸어 공정경쟁을 보장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실효성 측면에서 한계가 분명했다는 평가다. 업계는 공정위가 동일한 과오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2일 KT와 LG유플러스는 공동 명의의 보도자료를 내고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에 대해 공정위가 철저하고 신중하게 심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구체적으로는 지난 18일 발표된 통신시장 경쟁상황평가 결과를 심사에 반영해야 하며, 해외 사례처럼 충분한 심사 기간을 둘 것을 요구했다. 또 이번 합병에 따른 소비자 손실 확대를 감안할 것을 강조했다.
두 회사가 이례적으로 공정위를 상대로 공개적으로 입장 표명에 나선 것은 과거 두 차례의 굵직한 합병 당시 공정위가 SK텔레콤의 몸집 부풀리기를 용인해, 통신시장의 경쟁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분석 때문이다.
특히 당시 공정위가 인수합병을 허용하면서 몇몇 부대조건을 내걸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면죄부를 준 모양새가 됐다.
2000년 1위 사업자 SK텔레콤과 3위 사업자 신세기통신의 합병 당시 공정위는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행위'라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정조치를 동반한다는 이유로 기업결합을 허용했다.
당시 공정위는 '2001년 6월 30일까지 점유율 50% 미만 유지', '단말기 제조사로부터 2001년부터 5년간 연 120만대를 넘는 단말기 공급 제한' 등의 조치를 내걸었지만 이후 SK텔레콤의 독주를 막기에는 너무도 가벼운 허들이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2003년 SK텔레콤이 54.5% 점유율을 회복했다"며 "단말기 총 구매 물량이 60만~70만대 수준인데 120만대를 상한으로 부과한 점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2006년 공정위가 외부 용역을 통해 작성한 보고서 역시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의 합병은) 경쟁 저해성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기업결합을 '한시적 점유율 상한 부과' 조건만으로 허용해 문제가 많다"며 "일시적인 점유율 규제만으로 경쟁제한성을 해소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면, 그것은 지나친 낙관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2008년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 인수합병을 공정위가 승인한 것 역시 경쟁 제한을 부추겼다는 평가다.
당시 공정위는, SK텔레콤이 자사 이동통신 서비스와 하나로텔레콤의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결합해 판매하는 경우에 결합상품 출시를 원하는 타사에도 동일한 가격조건으로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른바 동등결합이다.
하지만 SK텔레콤은 자사 이통통신 서비스를 하나로텔레콤 초고속인터넷과 묶는 대신, 하나로텔레콤의 초고속인터넷을 도매로 사와 자사 이동통신 상품과 결합해 판매했다.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초고속인터넷 재판매 전략이다.
이렇게 하나의 법인이 이동통신서비스와 초고속인터넷을 결합해 판매하면, 외부에서 볼 때 실제로 얼마의 가격에 이동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감시가 불가능해진다. 동등결합을 규정한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공정위의 시정조치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KT 관계자는 "어떤 식으로 (독점) 제한을 해도 법으로 이를 다 막기 어려우며 빠져나갈 구멍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물러 2000년과 2008년 두 번의 공정위 심사에서 모두 '효율성 증대효과가 경쟁제한 효과보다 크다 않다'는 공정위 자체 결론에도 불구하고 기업결합을 허용한 점을 업계는 주목한다.
이번 2016년 합병에서도 실효성 없는 시정조치를 부과하며 경쟁 상황이 제한되는 것을 공정위가 방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공정위가 공개적으로 업계와 소통하지 않고 형식적인 청문 절차를 밟고 있어 현실과 동떨어진 ‘조건부 승인’을 다시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KT 관계자는 "이번 인수합병 사안은 과거 SK텔레콤의 기업결합 사례보다 훨씬 심각한 부정적 효과를 야기하기 때문에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면밀한 심사와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12월 1일 시작된 공정위 심사는 현재 넉 달 째를 채워가고 있다. 서류 접수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심사(90일 연장 가능)하도록 한 법령에 따라 지난달 말 기업결합 심사를 끝냈어야 했지만 중간 중간 업체 측에 자료 보완을 요청해 이 기간만큼 심사 기간이 늘어났다. 공정위는 조만간 심사 결과를 종합해 미래부 측에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핌 Newspim]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