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정경환 김나래 기자] 정부가 국책은행 자본확충 추진 과정에서 국회를 피해 갈 조짐이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한 구조조정 자금 마련안에 대해 야당이 반기를 들고 나서자 한은의 판단이 우선이라며 살짝 뒤로 숨었다. 기본적으로는 협의사항이라고 하면서 한은을 앞에 내세움으로써 향후 추진 과정에서의 부담을 덜고 가려는 의도가 아닌지 주목된다.
3일 관가 및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가 중앙은행을 이용한 국책은행 자본확충과 관련해 '한은의 판단'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제1차관 <사진=뉴스핌 DB> |
최상목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이날 "중앙은행이 법적 책무가 있으니 한은이 판단해서 할 일"이라며 "산금채 매입, 출자 등은 중앙은행의 이슈"라고 말했다.
바로 전날, 과거와는 다른 중앙은행의 역할이 필요하다며 구조조정 자금 마련에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에 대한 명분 쌓기에 나선 정부가 이제 그 구체적인 실행지침(?)까지 암묵적으로 제시하는 듯한 모습이다.
앞서 최상목 차관은 지난 2일 기재부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정부든 중앙은행이든 역할이란 게 상황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며 "중앙은행의 역할에서 이제는 과거와 다른 발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었다.
그 실행지침은 수은에 대한 출자로, 정부가 국회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한은의 수은 출자를 기정사실로 하고 있는 게 아닌지 관심이 모아진다.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으로는 현재, 한은의 산업은행·수출입은행에 대한 출자 또는 산업금융채권(산금채) 매입 등이 검토되고 있다. 그런데 이 중 산은에 대한 출자는 현행법상 불가능하고, 산금채 매입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다만, 수은 출자만은 현행법 테두리 내에서 당장 추진할 수 있다.
이에 정부가 한은의 판단이란 점을 내세워 수은 출자를 선택함으로써 향후 있을지도 모를,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국회 또는 국민의 비난을 비껴가려고 시도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인데, 지난달 총선 결과 제20대 국회가 여소야대로 결론 나면서 국회를 거칠 경우 만만찮은 진통을 겪을 게 자명한 것이 그 동기다.
현재 한은의 발권력을 이용한 국책은행 자본확충과 관련해 야당의 반대 목소리가 만만찮다.
야권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구조조정 자금 마련 방안으로 추진 중인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해 국민 부담만 가중하는 미봉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재경 대변인이 "정부 방침 자체가 한은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했고, 주진형 전 국민경제상황실 부실장도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양적완화의 원조 일본도 한 3년 하다가 안 되니까 관뒀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은 한국판 양적완화의 실효성이 없다며 날을 세우고 있다. 김정현 국민의당 대변인은 "최근 정부가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이용하겠다는 등 무리수를 두고 있다"며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정책을 양적완화라는 이름으로 집행하려 한다면 그 결과는 국민적 반발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최상목 차관은 "그건(국회를 피하려는 건) 아니다"면서 "한은의 판단이 있고 나서 정부가 그를 검토해 안을 만들고, 그게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하면 국회의 협조를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정경환 김나래 기자 (hoa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