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박영암 금융부장] 금융감독원이 '자살보험금' 지급을 미루는 생명보험사들에 대해 불편한 속내를 여과없이 드러낸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금감원 고위간부는 '사기집단'으로 묘사할 정도다.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금감원이 자살보험금 미지급 생보사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며 우려를 나타낸다.
최근 시민단체까지 금감원 편을 들면서 생보업계는 더욱 궁지에 몰렸다. 생보업계를 고립무원의 곤경에 빠트린 자살보험금 관련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번째는 17개 생보사들의 종신보험 재해사망특약 해석에 관한 것이다. "자살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지만 2년경과 자살은 예외"라는 약관을 둘러싼 입장차이다.
금감원은 지난 2013년8월 ING생명 종합검사 이후 줄곧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생보업계는 자살은 재해가 아니라며 일반사망보험금만 지급하고 재해사망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이 문제는 최근 대법원 판결로 해결됐다. 대법원은 최근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보험계약해석 분쟁시 소비자를 우선 보호하는 '약관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을 적용한 결과다.
이제 남은 쟁점은 보험청구권 소멸시효에 관한 다툼이다. 유족 등 보험수익자가 재해사망보험금을 2년안에 청구하지 않을 경우 보험사가 이를 지급해야 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생보업계는 대법원 최종판결을 보고 지급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금감원과 시민단체들은 "대법원 판결과 상관없이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감원에 따르면 자살관련 미지급 재해사망보험금(2월26일 기준)은 2465억원. 이중 청구시효 2년이 지난 보험금은 2003억원(81%)에 이른다.
이상이 금감원과 생보업계가 각을 세워 온 자살보험금 논란의 개요다. 이번 논란으로 생보사들이 입은 상처는 크다. 심지어 "신의성실의 원칙을 저버린 사기집단"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생보업계에 대한 비판은 과하다. 사회적 강자인 생보사가 유족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소송을 제기한다는 매도는 합리적 해결을 어렵게 한다. 사실 자살을 재해로 인정하느냐를 놓고 법조계와 학계에서도 의견은 갈린다. 지난달 하순 한국보험협회 창립 52주년 기념학술대회에서도 자살보험금 지급을 놓고 상반된 결론의 논문이 발표됐다. 그런만큼 유족의 요청에 즉각 응하지 않고 법원에 판단을 요청한 생보업계를 사기집단으로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도를 넘어선 비판이라 할 수 있다.
2년 경과 재해사망보험금 지급여부를 대법원 판결후로 미룬 생보업계 입장도 충분히 일리있다. 경영진들에 대한 배임 우려는 합리적으로 들린다. 특히 충당금 부족으로 경영진들은 대법원 최종판결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대법원 판결전에 다른 명목의 회삿돈에서 지급할 경우 주주와 다른 보험상품 가입자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한다면 금감원이 "대법원 판결과 상관없이 지급해야 한다"며 생보사를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것은 과도한 월권으로 비춰진다. 금감원이 시민단체처럼 행동해서는 곤란하다.
물론 법리적 해결과 별개로 국내 생보업계는 이번 사건을 철저한 자기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보험약관을 쉽게 작성하는 것은 물론 이를 계약자에게 충분히 설명하는 고객중심영업이 절실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같은 요구에 생보업계가 귀기울이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 아쉽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생명보험상품설명서 등의 자살 관련 보험금 지급규정이 여전히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들게 작성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2의 ‘자살보험금’ 불씨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생보업계가 이번 자살보험금 논란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사기집단’보다 더 한 욕을 먹어도 할 말은 없다.
[뉴스핌 Newspim] 박영암 금융부장 (pya840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