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조동석 기자] 2002년 유로화 출범 당시 영국의 더 선(The Sun)은 '새로운 실수 새벽(Dawn of a new error)' 제하 머리기사를 실으며 유로화 체제를 혹평했다. 그러면서 영국은 유로존에 불참했다. 유로화 사용여부에 대해 국민투표를 한다고 했으나, 실제 국민투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사진=BBC> |
영국은 독일 주도의 통화통합에 최초의 ‘산업화’ 나라인 영국은 탐탁치 않아했다.
미국과 궤를 같이 하는 영국경제는 유럽대륙과 다른 경기 사이클을 보인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었다. 유로화는 유럽대륙의 것이지 영국의 것이 아니다는 분석이다. 결국 유로화 사용이 경제안정을 해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같은 통화를 쓰면 번영도 같이 하지만 위기도 함께 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역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영국은 유로화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시 파운드화는 견고했다.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은 터라 남유럽 재정 위기 당시에도 파운드화는 당당했다.
이런 영국이 유로존 가입 거부에 이어 EU 탈퇴 국민투표 가결이 유력해졌다.
최근 몇 년간 경기 침체, 긴축 재정, 이민자 증가 등으로 정치권에 대한 전반적 불신이 유럽 회의주의로 이어진 것이다.
아울러 EU 회원국 출신의 영국 내 이민자 수가 크게 증가함에 따라 이들과의 일자리 경쟁, 복지지출 확대에 따른 재정부담 문제 등으로 불만이 증대된 것도 브렉시트에 힘을 보탰다.
파운드화 가치는 24일(한국시간) 장중 10% 가까이 폭락하면서 1985년 이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날 정오 파운드화 환율은 전거래일 종가 대비 9.57% 하락한 파운드당 1.3467달러까지 떨어졌다. 파운드화 환율이 1.35 달러 아래로 내려간 것은 1985년 이후 처음이다.
엔화 환율은 이날 달러당 100엔선이 무너지면서 폭락했다. 엔화가치가 폭등했다는 얘기다.
EU 위상약화를 알면서도 유로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영국. 그들은 유럽대륙과 끊임없이 거리를 두며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영국인의 자존심이 브렉시트를 현실화한 것으로 보인다.
[뉴스핌 Newspim] 조동석 기자 (dsch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