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탈 업계로 자금이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정작 펀드매니저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스마트폰에 이어 소위 대박을 낼 차기 상품이나 기술을 발굴하지 못했기 때문. 올들어 벤처캐피탈 업계의 신생 기업 투자가 오히려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달러화 <출처=블룸버그> |
24일(현지시각) 업계에 따르면 연초 이후 9월 말까지 벤처캐피탈 업계로 유입된 투자 자금은 340억달러에 이른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2007년 이후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반면 같은 기간 관련 업체들의 기업 투자는 지난해에 비해 30%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골드 러시를 방불케 했던 스마트폰 열풍이 약 10년만에 꺾이는 가운데 투자 업계는 새롭게 대규모 시장을 형성할 상품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큰손들의 투자 자금은 자율주행 자동차와 드론, 인공지능 및 가상현실 등 다양한 분야로 흩어졌고, 스마트폰에 필적할 만한 차기 대작이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상황이다.
1970년대 PC 시장과 1980년대 인텔 및 마이크로소프트를 앞세운 소프트웨어 시장, 이어 2000년대 초반 월드와이드웹(WWW)과 중반 아마존을 필두로 한 전자상거래가 벤처캐피탈 업계에 금맥을 제공했고, 가장 최근에는 애플의 아이폰을 포함한 스마트폰이 쏠쏠한 과실을 안겨 줬다.
닷컴버블로 된서리를 맞은 벤처캐피탈 업체 가운데 일부는 페이스북과 그 밖에 소셜미디어 업체 투자로 한몫 챙겼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좌표를 상실했다는 것이 관련 업체들의 솔직한 얘기다. 페이스북이 오쿨러스 VR을 인수하면서 가상현실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지만 관련 기기의 판매 실적은 스마트폰에 비교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기대가 높지만 이미 업계 판도가 자리를 잡았고, 신생 기업 투자로 대박을 낸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이 시장 전문가들의 얘기다.
스마트폰 관련 앱과 우버의 폭발적인 성공으로 인한 이른바 온-디맨드 앱 역시 벤처캐피탈 업계의 시야에 포착됐지만 고수익률을 내는 투자처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
드래퍼 피셔 주베트슨의 베테랑 투자자로 평가 받는 스티브 주세트슨 대표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벤처캐피탈 업계의 자금이 로보틱부터 농산물 시장까지 사방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상당 규모의 자금이 손실을 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암 진단 소프트웨어 업체 컬러 지노믹스의 대표 겸 벤처 투자가인 일러드 길은 “스마트폰과 같은 시장을 형성할 다음 기술이 무엇인가를 가려내려는 고민이 상당히 깊다”며 “투자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분야에 뭉칫돈을 베팅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이 새롭게 각광받는 기술 개발자나 관련 신생 기업 인수에 뛰어드는 상황은 벤처캐피탈 업계를 더욱 곤혹스럽게 한다.
아베르딘 호로위츠의 크리스 딕슨 파트너는 “최근 수년 사이 애플과 구글, 우버가 로보틱스와 자동차 관련 기술자 수백 명을 신생 기업들이 엄두도 내기 힘든 연봉에 영입했다”며 “대기업들의 움직임은 상식적인 수위를 이미 벗어났다”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