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인가 아닌가.
8일(현지시각)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 회의를 지켜본 투자자들이 종잡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양적완화(QE)의 금액은 줄이고 기간은 늘린 ECB의 결정을 놓고 해석이 엇갈렸기 때문.
회의 결과가 전해진 뒤 유럽 주요국의 주식시장은 가파르게 뛰었고, 국채 수익률은 독일을 중심으로 급등한 뒤 상승폭을 일부 반납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출처:AP/뉴시스> |
유로화 역시 ECB의 회의 결과가 전해진 뒤 달러화에 대해 강한 랠리를 연출한 뒤 1% 이상 하락 반전, 트레이더들의 혼란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ECB가 ‘사실상’ 테이퍼링을 결정했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자산 매입 기간을 늘린 데 따라 전체 QE 규모가 당초 계획보다 확대된 것이 사실이지만 이번 조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축소하는 데 초점을 둔 것이라는 얘기다.
이날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는 미국에 이어 유로존까지 QE 시대가 종료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부인하고 있지만 자산 매입 프로그램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뉴턴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는 ECB가 ‘미니’ 테이퍼링을 단행했다고 분석했고, 일부에서는 ‘비둘기파’ 테이퍼링이라고 지칭했다.
하지만 이날 유럽 증시는 강하게 뛰었다. 범유럽 지수인 스톡스 유럽 600이 1.23% 랠리하며 351.96에 마감했고, 독일 증시는 무려 1.75% 치솟으며 1만1179.42를 나타냈다. 영국과 프랑스 주식시장 역시 각각 0.4%와 0.9% 오름세를 나타냈다.
투자자들이 ECB의 자산 매입 기간 연장과 전체 QE 규모의 확대에 더욱 커다란 반응을 보인 결과로 풀이된다.
닐 윌리엄스 에르메스 인베스트먼트 이코노미스트는 WSJ과 인터뷰에서 “이번 ECB의 행보가 테이퍼링이든 그렇지 않든 QE의 기간과 규모가 확대됐다”며 주가 상승 배경을 설명했다.
유로화 <사진=블룸버그> |
반면 유로존 국채시장은 전혀 다른 신호를 보냈다. 독일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ECB의 회의 직후 0.45%까지 치솟으며 11개월래 최고치를 나타냈다. 2년물과 30년물 수익률 스프레드 역시 지난해 7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벌어졌다.
이탈리아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장중 10bp 뛰며 2% 선에 진입했고, 같은 만기의 스페인 국채 수익률 역시 10bp 급등하며 1.54%를 나타냈다. 미국 10년물 수익률이 장 초반 5bp 이상 올랐고, 영국 10년물도 2bp 상승했다.
국채시장이 중앙은행의 정책에 보다 직접적이고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ECB의 속내에 대한 시장의 진단을 엿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마킷의 크리스 윌리엄슨 이코노미스트는 FT와 인터뷰에서 “ECB가 나름 현명한 절충을 한 셈”이라고 말했다.
내년 3월 본격화되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협상과 지난주 이탈리아에 이어 내년 연이어 예정된 유럽 주요국의 선거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을 완충하는 동시에 QE를 축소해야 한다는 ECB 안팎의 주장을 동시에 충족시켰다는 얘기다.
외환시장에서는 ECB의 회의 결과로 인해 달러화가 파죽지세로 뛰었다. 6개 바스켓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는 장중 1% 가까이 급등, 달러 인덱스가 101선에 진입했다. 달러화는 유로화에 대해 1.4% 치솟았고, 엔화에 대해서도 0.4% 올랐다.
이와 관련, 피델리티의 애나 스투프니츠카 이코노미스트는 “ECB가 시장의 예상보다 QE 기간을 길게 연장한 데다 내년 필요할 경우 자산 매입을 확대할 가능성을 열어둔 데 따른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