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성웅 기자] 고승덕 변호사에 대한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게 대법원이 벌금형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1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27일 지방교육자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조희연 교육감의 상고심에서 벌금 250만원의 선고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선고유예는 경미한 범죄에 대해 처벌하지 않고 2년이 지나면 면소해주는 판결이다.
조 교육감은 지난 2014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유세 당시 "고승덕 변호사(당시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미국 영주권이 있다는 다수의 증언이 나왔다"라고 주장해 선거법상 낙선 목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기소됐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렸던 1심에선 배심원 전원이 유죄 쪽에 손을 들어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이는 당선무효에 해당한다.
2심 재판부는 조 교육감의 주장은 악의적인 흑색선전이 아닌 공직 검증의 의도가 있다고 판단하고 1심보다 낮은 벌금 25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상고심에서는 이 판결이 그대로 유지됐다.
이에 따라 조 교육감은 교육감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조 교육감은 판결 직후 입장문을 통해 "후보자에 대한 의혹 해명 요구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유권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재판부가 확인시켜줬다"며 "남은 임기동안 균형 잡힌 교육정책을 주진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조희연 교육감 입장문 전문.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지방교육자치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상고심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먼저 전향적인 판단을 내려주신 재판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서울시교육감으로 일해 오면서 재판을 받는 지난 2년 동안은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저 개인이 교육감 직을 유지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떠나, 백년대계라는 교육을 책임지고 있으면서, 서울교육 수장의 자리가 안정되지 못해 아픔을 겪어온 서울교육가족 여러분들에게 계속 불안감을 드리우고 있다는 점 때문에 마음이 매우 무겁고 괴로웠습니다. “신께서는 시련을 통해 인간을 단련시킨다”는 말을 믿으며, 저를 더욱 강하고 공정하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 단련해주시기 위한 시련이라고 여기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괴로운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항소심에서 일부 무죄, 일부 유죄이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고, 오늘 대법원에서 이 항소심의 판결을 확정함에 따라, 법원은 지난 번 선거 때 저의 행위에 대해 “부분적으로 유죄이나 가벌성이 없기 때문에 선고를 유예한다”는 의견을 밝혀주신 것으로 저는 이해합니다. 저는 이 판결을 무겁게 받아들입니다. 특히 부분적으로 유죄로 판단하신 대목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지난 2014년 선거 때 경쟁자였던 고승덕 후보님에게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악의적인 의도는 전혀 없었고, 오로지 후보자 적격 검증을 위해 계속 대화하자는 취지에서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기술적 미숙함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일부 유죄를 낳았으므로, 고 후보님께는 법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앞으로 고승덕 변호사님의 인생행로에 늘 행운이 따르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오늘의 확정 판결에 힘입어 서울교육의 안정성과 정책의 연속성이 보장되어 무엇보다 기쁘고, 그에 대해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저의 당선 이전에 여러 차례에 걸쳐 교육감들의 중도 하차와 그에 따른 정책의 부침으로 인해 서울교육 가족들이 입은 트라우마와 혼선을 생각할 때, 저 개인의 문제로 서울교육가족들에게 상처를 드리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저는 마음의 큰 부담을 덜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공정하고 균형 잡힌 교육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오늘의 확정 판결을 통해 지난 2014년 교육감 선거 때 저의 캠페인 가운데 일부 무죄가 확정된 부분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후보자 적격 검증을 위한 의혹 해명 요구는 무조건 ‘허위사실 유포’인 것이 아니라 선거운동 과정에서 유권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민주주의의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임을 확인시켜주었다는 점에서 오늘 재판부의 판단은 우리 사회의 정치적 발전을 위한 뜻깊은 판결이며, 보편타당한 사법적 원칙과 민주주의 원리에 맞는 현명한 판결을 내려주신 재판부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격동을 맞이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선출직을 뽑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 후보자 검증이 얼마나 중차대한 일인지 뼈저리게 깨닫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헌정사에서 중요한 고비마다 용기 있는 판결로 민주주의의 법 제도를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도록 뒷받침해준 법원이 다시 한 번 의미 있는 판단을 내려주신 것으로 받아들이며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기소되고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줄곧 저에 대한 기소 자체가 부당한 것이라고 하는 점을 항변한 바 있습니다. 최근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를 통하여 ‘청와대가 저에 대한 보수단체의 고발과 이에 따른 검경 수사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바 있습니다. 이것이 어느 정도 사실인지는 더 탐문해보아야겠지만, 그래도 저에 대한 고발과 기소과정의 부도덕함이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도 저는 대법원이 저의 항변을 일정하게 수용해 주신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오늘, 개인적으로는 참 많은 상념에 젖습니다. 저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두 박 정권 아래에서 산 셈입니다. 아버지 박정희 정부시절에는 대학생으로서 ‘긴급조치 9호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수감생활을 한 바 있습니다. 젊은 시절이었지만 참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박근혜 정부 하에서 2년 동안 ‘허위사실 유포’라는 죄목으로 다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첫 번째 박 정부는 권위주의 시대였습니다. 지금은 형식적 민주주의의 시대이지만, 국정농단과 부패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시대입니다. 민주주의이지만 민주주의가 아닌, 비정상적인 시대입니다. 두 시대의 차이와 그 속에서 제가 겪어온 정치적 경험의 차이를 생각하면서, 두 시대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계신 많은 분들에게 절망을 희망으로 이기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라고 싶습니다.
돌이켜 보면, 지난 2년의 시간, 고통스러운 만큼 저 조희연이 성숙하고 단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쌓아온 내면의 힘을 앞으로는 더욱 따뜻하고 더욱 정의로운 서울교육을 위해 마음껏 쏟아부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뉴스핌 Newspim] 이성웅 기자 (lee.seongwo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