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훈 정치부 기자> |
[뉴스핌=조세훈 기자]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죽은 뒤에 하는 약 처방은 소용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죽은 뒤 처방이 정말 무의미할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아플 때 약을 처방하는 게 최선책이지만 '사후약방문'도 같은 증세를 가진 다른 환자에게는 귀한 약이 될 수 있다.
국회 청문회는 사후약방문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어떤 폐단이 발생했을 때, 문제의 근원을 정확히 파악해 처방하는 작업이다. 이를 통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우리의 청문회를 보면 아직 멀었다는 자괴감이 든다. 두 달여간 진행된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는 시작부터 6차 청문회까지 ‘맹탕 청문회’라 지탄 받았다. 9일 개최된 마지막 청문회마저 20명의 증인 중 3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출석한 증인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되레 의원들을 상대로 거친 모습마저 드러냈다.
정동춘 K스포츠재단 이사장은 이날 이혜훈 바른정당 의원이 ”고발조치 하겠다“고 하자 ”그렇게 하라“며 고압적인 자세를 보였다. 지난해 12월 15일 열렸던 4차 청문회에서 “죄송하다. 거기까지는 생각 못해 봤다”고 목소리를 낮췄던 것과 사뭇 달랐다. 처음엔 몸을 바짝 낮췄지만 솜방망이 청문회임을 알게 되자 태도를 바꾼 것이다.
미국에선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허드슨강의 기적'을 보면 승객을 구한 영웅 설리 기장조차 청문회장에 섰다. 발생한 사건에서 어떤 오류가 있는지, 한 점 의문 없이 원인과 책임을 규명해야만 한다는 원칙과 믿음에 따라야 했다.
미국 청문회에서 증인들은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다. 의회는 증인이 불출석하거나 출석하더라도 불성실하게 답변할 경우 모욕죄로 판단해 증인을 의회 내 법정에 세우거나 감옥에 구금할 수 있다. 위증을 하면 1만 달러(약 1200만원) 이하의 벌금과 5년 이하의 구금형을 내린다. 그래서 미국 의회의 청문회에 불려가는 증인들은 경솔한 태도와 고압적인 자세를 스스로 경계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말로만 호통칠 게 아니라 제도적으로 '맹탕 청문회'를 멈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국회 청문회에서 국민의 의혹을 씻겨줘야 한다. 사후약방문을 잘 해야 경계심을 높일 수 있고 사회가 한 단계 성숙해진다.
[뉴스핌 Newspim] 조세훈 기자 (askr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