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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IT기업 알리바바 일궈낸 5인의 마윈幇

기사등록 : 2017-01-23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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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을 만든 사람들, 이들 아니면 마윈도 알리바바도...

[편집자] 이 기사는 1월 20일 오전 10시14분 프리미엄 뉴스서비스'ANDA'에 먼저 출고됐습니다. 몽골어로 의형제를 뜻하는 'ANDA'는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과 도약, 독자 여러분의 성공적인 자산관리 동반자가 되겠다는 뉴스핌의 약속입니다.

[뉴스핌=백진규 기자] 마윈 알리바바 회장은 종종 “나는 밖에서 말을 하는 사람일 뿐, 실무는 잘 모른다”는 말을 해 왔다. 또한 “성공은 팀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며 팀워크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가로 꼽히는 마윈의 배후에는 든든한 5명의 조력자들이 있었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협력해 알리바바 신화를 함께 써온 이들은 알리바바와 마윈을 지켜낸 든든한 보디가드 역할을 해 왔다.

◆ 알리바바 최대 지분 보유한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사진=블룸버그통신>

알리바바 하면 마윈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알리바바의 최대 주주는 일본 소프트뱅크이다. 또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2014년 9월 알리바바가 나스닥에 상장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인물로 꼽힌다.

나스닥 상장 전 알리바바 경영진의 자사 지분율은 10%에 불과한 반면, 소프트뱅크와 야후의 지분율은 각각 36.7%와 24%에 달했다. 더군다나 마윈이 보유한 지분에는 창업 멤버 18명의 지분이 섞여 있어 어디에 상장하는 것이 좋은지 의견도 불분명했다.

마윈은 경영권 사수를 위해 홍콩거래소에 차등의결권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알리바바의 선택지는 다시 상하이와 미국 나스닥으로 나뉘었고, 이때 손정의 회장이 마윈에게 미국 상장을 강력하게 추천했다.

결국 2014년 9월 알리바바는 나스닥 상장과 동시에 대박을 터뜨렸고 마윈 회장은 중국 최고 부자에 등극했다. 이와 함께 알리바바 지분 34.4%를 보유한 소프트뱅크의 손 회장도 일본 최고 부자에 오르면서 투자자로서 능력을 과시했다. 알리바바는 상장 첫날 주가만 38%올라 시가총액 2300억달러로 구글에 이어 세계 제 2위 인터넷 기업으로 도약했다.

알리바바가 아직 벤처회사였던 2000년, 손정의 회장은 2000만달러를 파격적으로 투자해 36.7%의 지분을 확보했고 알리바바의 나스닥 상장으로 14년만에 4000배 이상의 수익을 거뒀다.

◆ ‘마윈의 남자’ 차이충신(蔡崇信) 알리바바 부회장

알리바바가 아직 법인 등록도 마치지 않았던 1999년, 마윈은 투자유치를 위해 인베스터AB 홍콩지사의 아시아 투자를 담당자 차이충신을 만났다. 비록 투자 협상은 무산됐으나 이때 마윈은 더 큰 선물을 얻었다. 협상 4일만에 차이충신이 알리바바에 합류하겠다고 연락한 것이다.

차이충신 알리바바 부회장 <사진=바이두>

예일대학교에서 경제학과 법학을 전공한 차이충신(蔡崇信)의 당시 연봉은 300만홍콩달러에 달했으나, 그는 월급 500위안을 주는 벤처기업 알리바바에 이직하기로 결심했다. 차이충신은 훗날 이직한 이유에 대해 “마윈의 카리스마와 열정에 반했다”고 담담히 설명했다.

당시 마윈을 비롯한 알리바바 경영진들은 재무·법률 업무의 문외한이나 다름없었다. 차이충신은 알리바바의 재무책임자(CFO)로서 투자 유치, 법인 설립, 계약서 작성 등을 담당하면서 조직의 기초를 닦았다.

차이 부회장은 또한 골드만삭스, 피델리티, 소프트뱅크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는데도 결정적 역할을 해냈고, 2005년엔 8200만달러를 조달해 알리바바의 야후차이나 인수를 주도했다.

마윈 회장은 “차이충신은 내 인생의 은인 4명 중 1명”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차이충신 부회장의 알리바바 지분은 3.6%로, 마윈 회장(8.6%)에 이어 개인주주로는 두 번째로 많은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 초창기 알리바바 18인 멤버의 한명 쑨퉁위(孫彤宇)

쑨퉁위는 알리바바 초창기 멤버 18인 중 한 명으로, 알리바바의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淘寶) 개발과 운영을 담당했다. 알리바바 관계자들은 “쑨퉁위가 없었다면 타오바오가 중국 최대 온라인 마켓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마윈 다음으로 알리바바에 기여한 인물로 쑨퉁위를 꼽는다.

쑨퉁위는 2008년 돌연 알리바바를 떠난 뒤 교육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해 운영하고 있다. 업계는 알리바바 경영진들 사이에서 의견 충돌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으나 정확한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함께 알리바바 창업에 합류했던 부인 펑레이(彭蕾)는 현재 알리바바 계열사 샤오웨이금융그룹(小微金融服務集團) 대표와 알리바바그룹 최고 인사책임자(CPO)를 맡아 알리바바 운영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

◆ 알리바바 문화를 만든 관밍셩(關明生)

52세의 나이로 알리바바에 입사한 관밍셩은 최고운영책임자(COO)로서 10년간 알리바바 문화를 만들면서 조직 구성을 다졌다. 2001년 당시 적자에 허덕이던 알리바바가 1년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게 된 것도 관밍셩 덕분이었다.

관밍셩이 입사하기 전 마윈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어떻게 직원을 해고할까’ 였다. 당장 운영자금이 부족해 직원들 월급 주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때 GE차이나에 근무하던 관밍셩이 알리바바에 합류하면서 문제가 해결됐다. 한 외국 직원의 프로필을 살펴보던 관밍셩이 직원을 호출해 다짜고짜 “당신은 해고야”라고 외친 일화는 특히 유명하다. 그는 “그 직원 연봉이면 비슷한 실력의 직원 10명을 고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해고했다”고 설명했다.

영국 옥스포드에서 유학하고 GE차이나에서 근무한 그의 경험은 알리바바가 기업문화를 갖추는데 꼭 필요한 요소였다. 직원들은 “관밍셩 덕분에 알리바바가 체계적인 구조를 갖추고 수익을 개선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 알리바바의 ‘소방관’ 루자오시(陸兆禧)

루자오시 알리바바 부회장 <사진=바이두>

2013년 3월 마윈은 루자오시 당시 최고 데이터책임자를 알리바바 CEO로 임명한 뒤 알리바바 회장직만 맡기로 결정했다. 루자오시는 알리바바의 B2B영업 담당자로 시작해 알리페이 총재, 타오바오 총재를 역임하고 타오바오의 C2C시장 진출을 진두지휘 한 인물이다.

루자오시는 알리바바의 ‘소방관’으로 불리며 위기의 순간마다 알리바바를 구해냈다. 마윈 회장은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직원들에게 “루자오시를 찾아가라”고 말할 정도였다.

특히 루자오시는 2008년 알리바바 B2B에서 회계 스캔들이 터졌을 때 책임자로 나서서 B2B조직을 재정비했고, 2012년 9월 구글에서 알리바바가 독자 개발한 스마트폰 운영체제 윈OS를 공개적으로 압박하자 구글에 윈OS를 설명해 안드로이드 시스템과 충돌을 막기도 했다.

 

[뉴스핌 Newspim] 백진규 기자 (bjgchina@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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