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주 감시체계 강화"
테마주들이 기승을 부리는 시즌이 되면 금융당국이 반복하는 말이다. 면밀한 계좌 분석을 통해 의심계좌를 찾아내고, 검찰 등 사법당국과도 협력해 인위적인 루머 확산 루트도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그럼에도 테마주 '노름'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테마주들은 대체로 말도 안되는 이유로 주가가 급등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가 어찌됐든 가파른 상승곡선을 보면 누구나 현혹되기 쉽다. 이처럼 급등한 주식들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었을 것 같지만 통계는 그렇지 않다. 관계당국에서 내놓은 통계를 보면 대부분 손실을 본 것으로 집계된다. 한국거래소가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른 정치 테마주 16개 종목을 분석한 결과, 정치 테마주 투자자의 97%가 개인 투자자였고, 정치 테마주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 10명 중 7명이 손실을 본 것으로 분석됐다. 주가가 오르는 사이 사고 팔면서 대부분 손실을 봤다는 얘기다. 손실을 보는 계좌들은 '오를때 추종매매하고 급락하면 겁나서 팔고'식의 매매패턴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테마를 탄 종목들은 사기꾼들의 좋은 사냥도구가 되기도 한다. 증권방송 등에서 자칭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와 작대기를 그어가며 '여기서 들어갔어야 한다'면서 도사 노릇을 한다. 세력주를 알려준다면서 돈도 내란다. 왜 이런 사기꾼들이 계속 장사를 할 수 있겠는가. 대체로 증시에 갓 입문한 자들이 그들의 먹잇감이 되곤 한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그들의 타깃은 '호구'다. 끊임없이 양산되는 대학생, 아줌마, 정년퇴직자 등 이제 막 주식을 시작한 사람들이 주요 타깃"이라고 한다. 이들이 하는 행동은 사기꾼들에게 돈을 내면서까지 도박을 하겠다는 거나 다름없다. 최근엔 개인방송이나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통해서도 이런 사기꾼들이 활개를 친다.
이제 정국은 본격적인 대선 시즌으로 접어들고 있다. 물론 대선 테마주들은 이미 1~2년전부터 활개를 치고 있다. '새로운 대선 테마주를 발견했다'면서 메신저나 SNS를 통해 여기저기 내용을 유포하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대부분 '피식' 웃고 끝날만한 내용이다. 특히 '인맥'을 강조한 재료들이 더더욱 그렇다. 그 회사 누가 대선 후보와 같은 학교를 나왔다거나 고향이 같다거나 하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런 이유로 주가는 오르니, 합리적인 설명이 어렵다.
금융당국의 테마주 때려잡기도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새로운 대책들과 규제들이 나오지만 테마주 광풍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다. 본인이 돈벌겠다고 불구덩이에 뛰어는걸 어떻게 막겠는가. 최근 택시를 탔다가 테마주에 주로 투자하고 있다는 택시기사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기자에게 이런저런 테마주들 얘기를 한 뒤 "대선 정국에선 테마주를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까지 했다. '그런 건 도박같은거 아니냐'고 반문을 했더니, '너나 잘하세요'라는 표정을 짓는다.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테마주에 투자하기 어렵다. 비이성적으로 오버슈팅(Overshooting)이 나오면 이 기회를 활용하는 이성적인 매도가 나와야 정상이다. 주가가 계속 오른다는 건 그런 매물이 없어서 나오지 않거나 추가 상승을 기대한 기존 투자자들이 보유하거나 신규 매수가 유입된데 따른 것이다. 후자의 경우 바보들이나 하는 짓 같지만 실제로 많은 테마주들이 가파른 상승세를 탄다. 그리고 대부분 '언젠가 거품이 꺼질 것'이라는 인식도 하고 있는 듯 하다. 내가 들고 있을때 터지지만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정작 테마를 탄 회사의 오너들은 기분이 어떨까. 최근 대선 테마주로 엮인 한 업체의 대표이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나쁠건 없다고 했다. 그는 "뭐라 하기는 좀 그렇고, 그냥 조용히 있는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이 회사는 문재인 테마주로 엮였는데, 그와 대화를 나눠보니 문재인 지지자도 전혀 아니다. 이 회사는 그가 창업한 회사고, 자녀에게 회사 지분을 물려줄 계획을 갖고 있다. 주가가 오르면 그만큼 증여세도 많이 나가서 승계비용이 많이 든다. 하지만 일단 주가가 오르니 기분은 좋은가보다. 조용했던 주가가 갑자기 한두달만에 2~3배 올랐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 회사 직원과도 관련 대화를 나눠볼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 '업(up)된 분위기'라고 전했다. 자사주를 들고 있었던 직원들 얘기다. 상당수는 올랐을때 이미 차익실현을 한 것 같다고 했다.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는 여러 학설이 있지만 여전히 경계는 아리송하다. 테마주는 분명 투자보다는 투기에 가깝다는 것도 정설이다. '요행수'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테마주에 투자하고 있다는 한 투자자는 "어차피 모 아니면 도 아니냐. 반토막 각오하면서 갈때까지 가는거"라고 말했다. 노름을 하고 있다는 걸 본인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투자고수들은 다르다. 가치투자자를 추구한다는 거액 주식자산가에게 '보유한 주식이 테마를 탈 경우 어떻게 대응하냐' 물었더니 그는 "비정상적인 수익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바로 매도하고 나온다"고 했다. 실제로 더 많은 수익을 줄수 있을지 모르지만 스스로 '요행수'를 바라는 투자를 자제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기업가치와 무관하게 오르는 주식을 추종매매하는 것은 카지노 도박과 다름없다. 테마주 노름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투자자들 스스로 '투기'가 아닌 '투자' 마인드로 자본시장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뉴스핌 Newspim] 김양섭 기자 (ssup82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