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은빈 기자] 지난해 4분기 설비투자 증가세를 이끌었던 건 ‘반도체 호황’이었다. 이에 반도체 시장의 ‘온기’가 올해에도 이어질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 칩 개발 현장[출처=신화/뉴시스] |
◆ ‘나홀로’ 경기 이끈 반도체 호황
지난 25일 한은은 지난해 4분기 설비투자가 전기 대비 6.3% 증가했다고 밝혔다. 2012년 1분기에 12.2%를 기록한 이후 19분기 만에 최대치다.
오름세를 이끈 건 제조업의 설비투자 증가였다. 4분기 GDP 성장률은 0.4%였지만, 제조업의 기여도는 0.5%p였다. 제조업을 제외하면 지난 4분기는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이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설비투자가 두드러졌다. 정규일 경제통계국장 역시 4분기 GDP 성장에 대해 “반도체 관련 설비투자가 증가한 영향”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반도체 제조용 기기의 수입은 지난해 하반기 크게 증가했다. 한은에 따르면 4분기에 해당하는 지난 9월(113.1%), 10월(117.7%), 11월(80.4%), 12월(117.9%)에 반도체 및 평판 디스플레이 제조용 기기의 수입이 크게 증가했다. 반도체 제조용 장비는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해오는 정밀기계로, 반도체 제조용 기기의 수입이 증가했다는 건 곧 설비투자가 증가했다는 뜻이다.
현재 반도체 산업은 공급부족으로 가격이 오르면서 호황기를 맞이하고 있다. 반도체 정보 제공업체 DRAMeXchange에 따르면 올 1월 D램 메모리(DRAM DDR4 4GB)의 가격은 24.00달러로 전월 대비 33.3% 상승했다. 낸드플래시(128Gb MLC) 역시 4.54달러로 전월보다 7.6% 상승했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반도체업체들이 주력으로 하는 D램과 낸드 모두 가격이 오르는 등 업황이 좋기 때문에 반도체 업계의 설비투자는 올해에도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D램으로 이익 ‘쏠쏠’, 낸드플래시엔 투자 ‘쑥쑥’
전문가들은 반도체산업이 앞으로 ‘꽃길’을 걸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D램생산의 독과점체제 때문이다.
2013년 이후 D램 생산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사가 삼분하는 독과점 구조다. 때문에 제조업체 입장에선 호황기에 D램 설비투자를 늘려 굳이 공급초과상태를 만들 요인이 줄어들었다. 수급에 의한 장기호황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실제로 작년 한해 D램 설비투자는 역대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지난 12월 13일 도이치뱅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D램 메이커 3사(삼성,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2016년 D램 설비투자액은 전년대비 32% 감소했다. 올해도 3사는 D램의 CAPEX(미래 이윤을 위한 투자비용)를 전년대비 6%가량 깎을 것으로 예상된다.
4세대 3D 낸드플래시를 사용한 1TB BGA SSD <사진=삼성전자> |
하지만 전체 반도체 설비투자는 늘어날 전망이다. D램 투자는 줄어드는 대신 낸드(NAND) 투자가 급증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도연 교보증권 연구원은 “올해 삼성전자의 반도체 CAPEX규모는 17조~20조원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는 사상 최대 CAPEX였던 2015년의 14.7조원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최 연구원은 “이 중 50~60%가 낸드 투자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SK하이닉스도 26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2017년 투자액규모를 7조원 정도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6조원대였던 작년에 비해 증가한 수치다.
올해 상반기 완공 예정인 삼성전자의 평택공장은 낸드, 특히 3D낸드생산 위한 공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의 이천공장 역시 마찬가지다.
3D 낸드는 기존 평면 낸드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개발된 메모리 반도체다.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IoT)이 확산되면서 서버에 들어가는 SSD 용량이 급증하자, SSD에 들어가는 3D 낸드의 수요도 급증하는 추세다.
결국 국내 반도체산업은 현재의 이익(D램)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새로운 먹거리(3D낸드) 까지 움켜쥔 상황이다.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모 업계 관계자는 “D램에서 독과점체계가 안정된 후 3D낸드 시장이 열렸다는 건 한국에게 있어 축복”이라고 말했다. 삼성과 SK가 D램 호황으로 인해 3D낸드에 투자할 실탄을 가득 비축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 반도체만으론 경기회복 역부족…민간소비 부진 여전
다만 반도체 호황에도 안심할 순 없다는 지적도 있다. 반도체 산업은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지만, 국가경제 전체가 순풍을 만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GDP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민간소비(49.5%)는 여전히 부진하다. 지난 4분기 민간소비는 전기대비 0.2% 증가한 것에 그쳤다. 소비심리 역시 바닥이다. 올 1월 소비자심리지수는 근 7년 10개월 중 가장 낮은 93.3을 기록했다. 메르스 사태가 한창이던 재작년보다 낮은 수치다.
기업 역시 경기심리가 얼어붙은 것은 마찬가지다. 2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제조업 업황 기경기실사지수(BSI)는 75로 장기평균인 80에 못 미쳤다.
이근태 LG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역시 “반도체 등 일부 산업의 호황이 어느정도 충격을 완화해주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 올해 경기는 작년보다 좋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스핌Newspim] 김은빈 기자 (keb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