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영기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백악관이 중국 위안화, 유로화, 일본 엔화 등 주요 통화에 대한 '환율 조작' 공격에 나서자, 그 다음 대상이 어디로 향할지에 대한 궁금증이 높아지고 있다.
월가 투자은행(IB) 사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행보를 어떻게 해석할지 분분한 가운데, 대미 경상수지 흑자가 큰 한국과 캐나다가 유력하다는 진단이 나와 주목된다.
◆ 균형환율 보단 대미 흑자폭 주목해야
미국 경상수지 적자폭이 큰 나라들 <출처:블룸버그> |
미국 주요 씽크탱크에서는 환율의 특정한 수준이나 실질적인 외환시장 개입 여부 보다는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더 중요하다는 해석이 제기되는데, 이를 근거로 보면 전운이 조만간 한국에까지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 2일 자 블룸버그통신 보도에 따르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시니어 펠로우 윌리엄 클라인(William Cline)은 "트럼프 행정부의 환율전쟁 다음 타깃으로 캐나다와 멕시코, 그리고 한국이 유력하다"고 발언했다.
클라인이 주도한 지난해 11월 PIIE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가 최근 공격한 주요국은 미국의 가장 큰 무역 상대국이자 경상적자 유발 국가에 속한다.
보고서는 실질실효환율(REER)이 경상수지 적자를 균형으로 돌리기 위한 펀더멘털환율(FEER)로 가려면 원화는 지난해 10월 1126원 기준으로 6% 평가절상되어야 한다. 1058원대까지 하락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실질실효환율(REER)을 기준으로 펀더멘털까지 저평가 정도를 보면 싱가포르와 대만이 각각 27.4%와 25.6%에 달했다. 그 외에 스위스가 6.8%, 일본이 3.3% 순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중국위안화와 독일이 사용하는 유로화는 각각 0.7%와 0.8%, 케나다와 멕시코는 0.3% 저평가 된 상태로 나타났다.
◆ 고평가 통화도 공격 "무역 불균형 시정해라"
유로화나 페소화는 저평가 폭이 크기 않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피터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이 독일을 향해 극심하게 저평가된 유로화로 혜택을 보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나, 트럼프가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가 장기간 평가절하됐다고 주장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으로 비춰진다.
이에 대해 PIIE의 클라인 펠로우는 트럼프와 백악관의 발언의 기준이 환율 그 자체보다는 대미 무역흑자 규모라고 설명한다.
그는 "환율전쟁 대상으로 올라가는 데는 무역흑자 규모가 큰 국가가 더 가능성이 있다"며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동의하지 않겠지만 어쨋든 트럼프의 공격이 함의하는 바는 그렇다"라고 말했다.
실질실효환율(REER)과 펀더멘털실효환율(FEER) 비교 <자료=PIIE 보고서 2016.11> |
앞서 소시에테 제네랄(SG)은 PIIE의 펀더멘털균형환율이론(FEER)으로 판단할 때 유로화는 물론이고 위안화 역시 저평가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댜. SG도 트럼프 행정부가 겨냥한 것은 특정 통화라기보다 경상수지 흑자를 내고 있는 국가라고 진단하고, 중국과 독일, 일본 이외에 노르웨이와 스위스, 스웨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 한국 등 상당수의 국가가 새로운 타깃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모간스탠리도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내는 동시에 해외 투자 규모가 큰 국가가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 정책으로 인해 타격을 입을 것이란 얘기다.
대미 무역흑자 규모로 보면 중국이 3370억달러, 멕시코가 890억달러, 독일이 750억달러, 일본이 630억달러, 캐나다가 500억달러, 한국이 280억달러다.
중국과 독일, 일본에 대해 포문을 연 이유와 한국과 멕시코, 캐나다가 다음 대상이 될 것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 IB들, '통화전쟁에 대비하라' 경고
통화의 평가에 대해서는 클라인의 분석은 다른 연구기관들의 분석과 다르지 않다. 다른 독립적인 연구기관들도 캐나다 달러와 멕시코 페소는 모두 0.3% 고평가되고, 독일이 사용하는 유로도 0.8% 고평가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중국 위안화는 0.7% 고평가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런 기준으로 보더라도 원화가치는 6%저평가돼 그 정도가 확실한 반면, 엔화는 3.3%로 저평가 정도가 완만한 것으로 판단됐다.
서울 을지로 KEB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한 딜러가 환율 동향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스핌DB> |
노르웨이나 스위스, 싱가포르나 대만 등과는 달리 통화의 저평가 정도로 보나 대미 무역흑자 규모로 보나 트럼프의 포문이 한국을 향하고 있는 점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트럼프의 최근 환율에 대한 언급이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10월에 오바마 정부의 재무부는 중국, 일본, 한국, 대만, 독일, 스위스를 외환거래의 부당한 관행으로 감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메르츠방크(Commerzbank) 외환전략 책임자 울리히 로이히트만(Ulrich Leuchtmann)은 "통화전쟁(currency war)에 대비해야 한다"며 "경쟁적 평가절하는 세계 GDP성장, 국제무역 및 금융안정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외환시장을 쥐락펴락하며 혼란을 부추길 경우 글로벌 주요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공격적인 맞대응에 나서면서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씨티그룹 역시 독일 정부가 과거에 그랬듯 무역 및 경상수지 흑자에 흠집을 내려는 미국의 움직임을 이번에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스핌 Newspim] 이영기 기자 (00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