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은빈 기자] 무역적자 얘기도, 엔저(円低)에 대한 비판도 없었다. 하지만 환율전쟁의 ‘불씨’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통화 평가절하를 우회적으로 언급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간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 얘기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미일 정상은 양국 간 경제대화를 신설하기로 합의했다. 경제대화는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과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참가한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연내에 일본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미일 정상회담은 미국 신 행정부의 향후 무역행보를 평가할 가늠자로 여겨졌다. 회담 전인 지난 31일(현지시각)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은 수년간 환율조작을 했다”고 발언하며 긴장감이 올라가기도 했다.
하지만 정상회담이 시작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대일무역적자나 환율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센카쿠열도는 미일 안보조약의 대상이란 점을 분명히 하는 등 미일동맹을 굳건히 하는 분위기였다. 아베 총리 역시 "일본은 미국의 성장전략에 공헌하고, 새로운 고용을 창출할 것"이라며 공조를 강조했다.
일본은 한 고비 넘겼다는 입장이다. 아베노믹스가 사실 상 엔저 덕분에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직접 압박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형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일본이 내수가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트럼프의 환율압박에 고민이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도 정상회담 결과를 성공적으로 보는 분위기다. 닛케이지수와 달러/엔 환율 모두 상승으로 반응했다. 특히 달러/엔은 오전 중 달러 당 114엔을 넘어서기도 했다.
백악관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 <출처=AP> |
다만 불안감은 남아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중국 등의 자국통화 평가절하에 대해 “미국과 일본, 중국이 공정한 경쟁의 장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일본을 직접적인 비판상대로 두진 않았지만, 환율압박의 화살 자체를 거둔 것은 아닌 셈이다.
가라가마 다이스케(唐鎌大輔) 미즈호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언제 다시 트럼프가 달러화 강세를 견제하는 발언이나 트위터를 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사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노골적인 일본 비판은 하지 않았지만 낙관해서는 안 된다”며 “정상 간의 신뢰관계를 잘 살리고 냉정하게 협의를 추진해야 한다”고 경계감을 보였다.
무역적자, 환율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논의를 신설될 경제대화에서 다루자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후지토 노리히로(藤戸則弘) 미츠비시UFJ모건스탠리증권 투자정보부장은 “어떤 의미로는 (현안에 대한 논의를) 뒤로 미룬 것일 지도 모른다”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행정부를 좀 더 긴 시각에서 주의깊게 봐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문홍철 동부증권 연구원 역시 "미국 제조업이나, 물가를 위해서는 달러약세가 필요하다"며 "트럼프가 이번엔 '일본 달래기'를 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약달러를 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 외환시장은 일단 관망세를 보이고 있다. 달러/원 환율은 오후 1시 16분 현재 전일 대비 2.40원 오른 1153.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전승지 삼성물산 연구원은 "트럼프가 평소보다 발언의 톤을 약간 낮췄다는 점에서 시장은 일단 안도했지만 경계감은 존재하고있다"면서 "공정무역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는 점에서 아직 완전히 안심할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고 분석했다.
[뉴스핌Newspim] 김은빈 기자 (keb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