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은빈 기자] 테세우스가 나타나기 전까지 사람들은 그저 빌고 또 빌었을 뿐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위에 눕는 게 자신이 아니기를.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던 행인을 불러 제 침대보다 키가 크면 잘라죽이고, 짧으면 늘려죽이던 그리스 신화 속 도적이다. 절대적인 기준을 세워 타인에게 강요하는 모습은 2017년 현재 미국에게서도 엿보인다. 미국이 강요하는 침대의 이름은 ‘환율조작국’이다.
미국의 주 교역국은 다가오는 4월을 두고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양적완화로 사실상 엔저 유도를 해온 일본도 애가 타는 모양새다.
그런데 일본이 자신에게 트럼프 행정부의 쏠린 이목을 한국으로 돌리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시장에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의심은 최근 한 일본 유력지에 실린 칼럼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바로 19일 니혼게이자이(日本経済新聞) 인터넷판에 실린 칼럼, ‘트럼프증후군에 떨고 있는 한국발 검은백조’다.
해당 언론사 편집위원 다키타 요이치가 작성한 이 칼럼은 탄핵여파, 김정남 암살 등 악재에 직면한 한국을 염려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에 환율조작국 ‘딱지’를 붙이려는 것 같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칼럼의 주 내용이 우리 외환당국이 지난 15일 파이낸셜타임즈(FT)에 보낸 항의서한을 반박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해당 칼럼은 두 가지 점을 들어 항의서한 내용을 반박한다.
(1) 한국은 원화 약세 유도를 위한 일방적 시장개입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10월에 나온 미 재무부 보고서에는 “재무부는 한국이 외환개입을 무질서한 시장상황에서만 하도록 역설하고 있다”라고 했다. 미국의 강한 불만이 느껴진다.
(2) 한국은 고령화와 유가약세가 경상흑자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흑자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
여기에 “아시아에서 환율조작을 하는 건 중국이나 일본이 아닌 한국이다”라는 FT의 보도에 “(한국의) 두려움의 정곡이 찔렸다”는 표현도 덧붙인다.
실제는 어떨까. 먼저 밝혀야 할 것이 (1)에서 미국의 불만이 느껴진다고 말한 재무부 인용문은 한국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은 관계자는 “그 문장은 보고서에서 정책권고 부분에 나온 내용으로, 미국의 원론적인 입장을 서술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 불만을 표하기 위해 쓴 문장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해당 보고서엔 한국이 “지난 수년간 원화절상 방어를 위한 매입 위주의 비대칭적 개입에서 벗어난 것으로 평가한다”고 쓰여있다. 게다가 해당보고서엔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비율이 -1.8%다. 원화 평가절하를 위한 개입을 하지 않았다는 게 수치상으로 드러난 셈이다.
(2)의 경우는 한국 측의 논리의 타당성이 더욱 분명하다. 2014년에 LG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한 자료는 “30~60세는 경상수지 흑자 연령층”이라며 “한국의 경상수지는 대체로 인구구조가 제시하는 범위 내에서 변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고유가의 영향도 명확하다. 한은은 통상 유가가 10달러 하락하면 한국의 경상수지는 80억~86억달러 정도 개선된다고 밝힌 바 있다. 2014년 평균 배럴당 96.56달러(두바이유 기준)던 유가는 지난해 41.4달러였다. ‘경상 흑자가 많은 거 아니냐’는 칼럼의 주장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기준은 각 나라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닮았다. 이 침대를 피하는 방법은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자국의 상황을 미국에게 설득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팀장도 “경상수지 흑자국으로 지목되는 나라들과 공동으로 얘기하고 대응하는 면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느껴지는 모습은 ‘내’가 눕지 않기 위해 ‘남’을 눕히려는 것에 가깝다. 애초 파이낸셜타임즈의 보도가 나왔을 때도 트럼프 행정부의 타깃을 일본에서 타국으로 바꾸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파이낸셜타임즈그룹은 2015년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인수됐다.
해당 칼럼은 ‘(한국의 상황이) 일본에게 있어도 남 일이 아니다’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칼럼을 읽는 내내 느껴지는 건 철저하게 한국을 ‘남’으로 간주하는 시선과, 한국 내 불안감을 부추기는 듯한 손길 뿐이다.
[뉴스핌Newspim] 김은빈 기자 (keb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