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영기 기자] 네덜란드계 다국적 페인트 제조사 악조노벨(AkzoNobel)이 업계 1위 미국계 PPG의 인수 제안을 거절해 주목된다.
글로벌 인수합병(M&A)이 정치 바람을 타고 미국과 유럽 간 자존심 대결 양상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최근 유럽에 기반을 둔 네덜란드계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Unilever)도 미국계 기업 크래프트하인즈(Kraft Heinz)의 인수 제안을 거절한 바 있다.
<출처: 블룸버그> |
지난 12일 자 모닝스타,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지난 주말 악조노벨 주가는 76.20유로로 전일대비 3.41% 오른 반면 PPG 주가는 102.09달러로 0.84%하락했다.
비록 지난 목요일 악조노벨에서 1차 거절했지만 PPG에서 새로 수정된 인수제안을 할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주 1차 인수제안에서 가격은 악조노벨 1주를 83.00유로로 평가해, 현금 54유로와 PPG주식 0.3주를 지급하는 것이었다.
지난 화요일(7일) 악조노벨의 종가가 64.78유로인 점을 고려하면 인수가격은 약 29%의 프리미엄을 붙인 수준이다.
◆ 악조 노벨 "가격 너무 낮다"
PPG의 인수제안에 대해 1792년 설립돼 200년 이상 역사를 가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소재 악조노벨은 속으로는 발끈했지만 일단은 가격이 너무 낮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악조노벨 최고경영자(CEO) 톤 뷔흐너(Ton Buchner)는 지난 수요일 "PPG가 보내온 인수제안은 회사 가치를 너무 낮게 책정했고, 딜의 추진에서 상당한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악조노벨이 그간 수천명의 직원들과 함께 경영개선에 노력한 결과 이제 회사의 가치가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에 와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지금 업계 1위 회사가 2위를 인수하면서 제안한 가격에 프리미엄이 29% 붙은 것은 프리미엄 레이트로는 M&A 일반에 적용되는 수준의 상위에 속하지만, 실제로는 저평가 된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업계가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현재 1위 PPG와 2위 악조노벨이 합치면 1위를 확실히 굳힐 수 있지만, 이번 거래가 무산되면서 셔윈-윌리엄스가 발스파와 합쳐 시가총액 기준으로 업계 1위에 올라선다.
실제 인수 가격은 악조노벨의 세전영업이익(EBITDA)기준으로 보면 10.3배 수준이다. 이는 업계의 M&A 사례 평균 15배에 비하면 너무 낮다. 만일 같은 배수를 적용하면 악조 노벨의 가치는 주당 124유로로 90%의 프리미엄이 붙은 수준이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업계 3위 셔윈-윌리엄스(Sherwin-Williams)가 4위 발스파(Valspar)를 인수하는데 EBITDA의 15배를 지급키로 했고, 지난해 업계 7위인 바스프(BASF)가 10위권 밖의 프랑스계 케메탈(Chemetall)을 인수할 때도 15배, 10위권 밖의 솔베이(Solvay)가 지난 2015년 시텍(Cytec)을 인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증권사 올리브트리(Olivetree Securities)의 애널리스트는 "악조노벨은 가격이 너무 낮다는 주주들의 불평에 귀가 닮아 없어질 지경에 있다"고 말했다.
PPG는 일단 악조노벨측에서 보다 신중하게 이번 제안을 검토해 줄 것을 거듭 주장하고 있다. 주가로 미루어 보아 증시는 PPG의 표면적인 입장과 달리 조만간 새로운 제안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 국가간 자존심 문제?...'반 세계화 정서'
악조 노벨 CEO 톤 뷔흐너가 PPG의 인수제안을 거절한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금 반세계화 정서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200년 이상되고 종업원도 4만6000명이나 되는 기업에 대한 책임을 놔 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이런 상황도 M&A를 거절한 지원군인 셈이다. 더구나 불과 몇 주전에 미국 식품회사 크래프트-하인스가 네덜란드 유니레버 인수 제안건도 유리레버 측에서 거절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주 대선을 앞둔 네덜란드에서는 대규모 일자리 감소를 초래할 수도 있는 이번 딜에 대해 정치권이 발끈하는 분위기다.
네덜란드 경제장관 헹크 캠프(Henk Kamp)는 지난 목요일 "PPG의 인수제안은 네덜란드의 이익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경영 측면에서 보면 이번 딜이 상당한 비용절감 효과를 가져와 의미가 있지만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전문가의 관측이다. 베른스타인의 애널리스트 제레미 레데니우스(Jeremy Redenius)는 "이번 M&A건은 잠재적으로 강력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용 절감이 어디에서 일어나는가가 관건인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 조나단 구쓰리(Jonathan Guthrie)는 "약 30억달러로 추산되는 비용절감이 어디서 일어나느냐가 중요하다"면서 "유니레버 건도 마찬가지로 일자리 감소가 미국과 유럽 중 어디에서 일어나는냐가 정치권에서는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고 관측했다.
이미 악조노벨의 공장이 있는 영국 북동부 지역에서는 1000명의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악조노벨이 PPG의 인수제안에 수천명의 일자리에 대해 잠재적 불확실성을 불러온다고 평가한 것과 PPG측에서 상당한 비용절감 효과가 있다고 강조한 것이 이런 우려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 재무장관 에룬 데이셀블룸은 지난 주초에 "정부가 외국의 국내기업 인수를 차단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가져야 한다"며 "악조노벨의 M&A는 네덜란드의 이익에 절대적으로 배치된다"고 강조했다.
[뉴스핌 Newspim] 이영기 기자 (00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