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은빈 기자]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달라졌다. 이 총재는 23일 기자단과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 가능성이 낮다는 단서를 붙였지만,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 전과는 느낌이 살짝 달라진 발언이란 평가다.
G20 회의에 참석했던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환율조작국 지정에 대해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대비는 해야한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 역시 지난 1월 “기준을 정한 최근 법에 따르면 한국은 조작국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던 것과는 달리진 뉘앙스다.
이에 내달 발표될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에 대한 우려가 다시 나오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23일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이 총재는 "환율조작국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고 말했다. <사진=한국은행> |
한국에 환율조작국은 낯설기만 한 길이 아니다. 지난 1988년 10월부터 1990년 4월까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적이 있어서다. 당시 미 재무부가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던 이유는 현 상황과 유사하다. 바로 경상흑자와 대미무역 흑자다.
한은에 따르면 미국 측은 환율조작국 지정 이전부터 원화절상 요구를 계속해왔다. 한은 관계자는 “당시 미국은 양자협의를 통해 1987년 이후 늘어난 경상흑자 등을 이유로 지속적인 원화절상 요구를 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경상흑자는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1988년에 경상흑자는 당시 사상최대치를 기록한다.
결국, 미국의 압력은 표면화됐고, 원화는 급격하게 절상된다. 1987년 연중 평균으로 792.30원 하던 달러/원 환율은 1989년이 되면 679.60원으로 내려앉는다.
환율의 절상은 수출 가격경쟁력 약화로, 경상흑자 축소로 이어졌다. 1988년 141억달러였던 경상흑자는 1989년에는 50억달러로 줄어들었고, 1990년에는 22억달러 적자로 마이너스 전환했다. 대미무역 흑자 역시 1987년에서 1989년사이 30%가량 감소한다.
이에 GDP성장률도 급감했다. 1987년 12%대를 기록하던 GDP성장률은 1989년에는 7%로 내려앉는다. 2년 사이 5.4%가 주저앉은 것.
전문가들은 당시 환율조작국 지정의 후폭풍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팀장은 “환율조작국 지정 이후 원화가 강세를 보였고, 유가와 금리도 올라가면서 3저 호황이 반전됐다”며 “이는 한국경제의 부담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양자협의를 통해 미국 측의 요구를 수용한다. 가장 먼저 드러난 변화는 IMF 8조국으로의 이행이었다. IMF 8조국이란 IMF 협약 제8조의 의무를 이행하는 나라로 ▲경상지급에 대한 제한 철폐 ▲차별적 통화조치 철폐 ▲외국인 보유 통화의 교환성 보장 이라는 3가지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1990년 3월에는 환율 제도를 교역이 큰 나라들의 통화와 연계해 결정하는 ‘복수통화바스켓페크’제도에서 시장 수급에 따라 결정하는 ‘시장평균환율제도’로 바꿨다. 그리고 나서야 한국은 그해 4월 환율조작국에서 해제될 수 있었다.
유일호 부총리는 G20회의 참석 직후 기자들에게 “환율조작국은 안 가본 길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한 시장참가자는 "그때와 지금은 여건이 다른데, 가보지 않은 길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만약, 우리나라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 된다면 과거와 여파가 비슷할지, 아니면 다를지 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다만, 유 부총리가 했던 말처럼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길”이라는게 시장참가자들의 의견이다.
[뉴스핌Newspim] 김은빈 기자 (keb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