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최유리 기자] SK하이닉스가 일본 재무적 투자자(FI)들과 손잡고 도시바 반도체 사업 인수전에 뛰어든다. 해외 기업 매각에 대한 일본 내 부정적 기류에 대응하기 위한 선택이다. 미국과 중국 기업들도 인수전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돼 혼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CI=SK하이닉스> |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일본 FI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 제안서를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바 반도체 사업 매각 입찰은 이날 낮 12시에 마감된다.
일본 금융사와 사모펀드 등 현지 IF를 파트너로 택한 것은 입찰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당초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대만 홍하이그룹과 도시바 공동 인수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매각 지분 규모가 3조원에서 최대 20조원으로 커지면서 단독 입찰에 대한 재무적 부담이 늘어난데다, SK그룹과 홍하이그룹간 두터운 우호관계 때문이다.
변수로 부상한 것은 일본 내 여론이다. 반도체 기술 유출과 안보 문제를 이유로 중국이나 대만 업체에 반도체 사업을 넘겨줄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도시바 입찰에 일본 자본을 참여시키거나 미국 업체와 손을 잡는 게 낫다는 지적도 나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기업경영자협회의장이자 도시바 사외이사인 고바야시 요시미츠는 지난 28일 기자회견에서 "도시바의 낸드플래시 메모리는 사이버 보안,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에 활용되는 핵심 기술"이라며 "중요한 기술을 내주면 민감한 정보를 관리하는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공적 자금을 투입하거나 자국 외환거래법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외환거래법은 해외 자본이 국가 주요 사업을 매수할 경우 정부의 사전 심사를 받도록 한 제도다.
결국 SK하이닉스가 입찰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선 일본 금융권과 손을 잡을 수 밖에 없다는 게 투자업계의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IB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입찰을 포기하면 하이닉스뿐 아니라 중국에 반도체 기술을 넘겨주고 싶지 않은 일본 모두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는 셈"이라며 "일본 쪽과 연합을 꾸려야 인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관계자는 "FI들은 투자금 회수만 된다면 별다른 간섭 없이 SK하이닉스에 반도체 사업을 맡길 것"이라며 "하이닉스의 재무적 상황이나 낸드플래시 사업 능력을 고려하면 FI 입장에서도 괜찮은 파트너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4분기말 기준 현금 보유액은 4조1360억원이다. 현금창출력을 뜻하는 이자, 세금, 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EBITDA) 마진율은 50%를 기록했다. 사업적으로는 도시바가 점유율 2위를 달리고 있는 낸드플래시에 공격적 투자를 진행하고 있어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일본 내에 웨스턴디지털(WD)이나 마이크론 등 미국 업체가 인수하기를 선호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서다. 특히 WD는 이미 도시바의 낸드플래시 생산 거점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어 일본 금융권과 함께 뛰어들 경우 강력한 경쟁자가 된다.
또 다른 후보인 중국 칭화유니그룹도 국영은행과 반도체펀드로부터 약 24조원을 조달해 인수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도시바는 이날 예비 입찰을 마치고 경영권을 포함한 반도체 사업 지분의 50~100%를 경영권을 매각한다는 방침이다. 오는 6월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해 내년 3월까지 매각을 마무리할 전망이다.
한편 도시바 매각 입찰에 대해 SK하이닉스 홍보팀은 "참여 여부나 방식에 대해서는 어떤 얘기도 해줄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뉴스핌 Newspim] 최유리 기자 (yrcho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