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규희 기자] 지난 주말 A씨는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에 들렀다가 주차공간이 없어 곤란을 겪었다. 주차장에서 마트 출입구 가까운 곳은 핑크색으로 그려진 여성 전용 주차공간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 곳에 자리가 몇 개 있었지만 A씨는 남성이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향해야만 했다. A씨는 출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구석 자리에 차를 겨우 대고서야 마트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여성 전용 주차공간 [뉴시스] |
주차장에 자리가 없다면 여성 전용 주차 공간에 남성이 주차해도 된다. 근거가 되는 조례 상위법에 구체적 규제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지난 2009년 신설 주차장에 의무적으로 여성 전용 주차공간을 지정하도록 하는 ‘주차장 설치 및 관리 조례’를 의결했다. 조례에 따르면 30면 이상 주차장이라면 일정 면적 이상의 여성 전용 주차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조례를 바탕으로 대형 마트, 백화점 등 건물에는 여성 전용 주차공간이 마련됐다. 하지만 남성이 주차하더라도 막을 방법이 없다.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 임산부석·노약자석처럼 사실상 권고 수준에 머물러 있어 마땅한 규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한 대형마트 주차 안내 요원 김모씨(26)는 “남성이 여성 전용 주차공간에 주차하려고 하면 제지는 하지만 구체적인 패널티를 주진 않는다”며 “평소에는 이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지만 주말같은 경우엔 주차 자리가 없어 여성 전용 주차공간이더라도 그냥 주차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조례의 상위법에 구체적인 규제 근거가 없어 여성 전용 주차공간에 남성이 주차하더라도 법적인 제재를 가할 수 없다. 서초동에서 근무하는 한 변호사는 “구체적인 규제 내용을 적시한 법규가 없어 사실상 처벌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수정 또는 보충 입법활동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비장애인 차량이 장애인 전용 주차공간에 주차하면 과태료 50만원까지 부과하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과 대조적이다.
여성전용 주차공간은 여성 안전을 보장하고 아이와의 동행으로 인한 불편을 줄이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남성이 이용하더라도 별다른 제재가 없어 ‘여성 전용’ 주차구역이 무색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아이를 동반한 여성에게 넓은 주차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실효성이 떨어지는 만큼 남녀 모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주차공간이 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울시내 4년제 대학 한 행정학과 교수는 “장애인·임산부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전용주차공간의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불완전한 정책은 역차별과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여성전용 주차공간의 입법 취지가 여성운전자를 배려하고 여성 대상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것인데 이는 오히려 여성들이 범죄자들에게 더욱 쉽게 노출되게 하기도 한다”며 “여성 뿐 아니라 모두가 안전해질 수 있는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뉴스핌 Newspim] 김규희 기자 (Q2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