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정경환 기자] 인사 검증 부실 논란이 잇따르면서 청와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20일 고위공직자 후보들의 보다 철저한 인사 검증을 위한 '인사추천위원회'가 이날부터 본격 가동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오늘 오후 4시에 인사추천위가 열릴 예정"이라며 "실질적으로 논의하는 첫 회의"라고 말했다.
인사추천위는 문재인 정부 첫 내각 인선 과정에서 부실 검증 논란이 이어지자 청와대가 과거 참여정부 당시의 인사검증시스템을 부활시킨 것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등에 대한 인사 검증 과정에서 논란이 잇따르고,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자질 논란 끝에 사퇴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인사추천위 참석멤버는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인사수석(간사), 정책실장, 안보실장, 정무수석, 민정수석, 국민소통수석, 국정상황실장과 그 외 인사영역에 따른 관련 수석들이다.
청와대는 현재 '후보 추천→2~3배수 압축→약식 검증→1~2배수 압축→정밀 검증→인사 발표' 단계의 인선작업 가운데 앞으로는 인사추천위를 통해 정밀 검증 대상을 3배수까지 늘리는 방식 등으로 인사검증시스템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사진=청와대> |
다만, 인사추천위를 거친다고 해서 부실 검증 또는 자질 논란 발생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질지는 의문이다. 흠결 없는 적합한 인선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문 대통령이 직접 경험했고, 또 실토하기도 했다.
대선과정에서 약속한 인사 배제 5대 원칙(병역 면탈·부동산 투기·세금 탈루·위장 전입·논문 표절)이 결과적으로 깨진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강화된 인사 검증시스템까지 가동했는데도 다시 검증 논란이 불거진다면 인사추천위는 오히려 활로(活路)가 아닌 사로(死路)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5대 원칙을 저버렸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지난 13일 김 공정거래위원장에 이어 18일 강 외교부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당장 국회에서 난리가 났다. 대통령이 '협치'를 거부한 것과 다름없다며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야당 측에선 앞으로 진행될 인사청문회와 추경 편성안, 정부조직 개편안 등에 대해 협조하지 않겠다며 날을 세우고 있다.
한국당을 중심으로 야당들은 지난 19일 예정됐던 5개 상임위원회를 보이콧 하는 한편, 청와대 인사검증과정의 문제를 따져보기 위한 국회 운영위원회 소집을 추진하고 있다. 청와대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 그리고 조현옥 인사수석 등을 출석시켜 부실한 인사 검증에 대해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한국당은 이날 국회를 찾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예방도 끝내 거절했다.
정국 분위기가 경색되면서 자연스레 남은 인선도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다.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는 국무위원 인선만 보더라도, 기존 산업통상자원부와 보건복지부 장관에 이어 안 후보자 사퇴로 공석이 된 법무부장관을 포함해 세 자리가 미정이다. 아직 후보자가 발표되지 않은 검찰총장도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4대 권력기관 중 하나로 국회 인사청문 대상이다.
예상치 못한 안경환 후보자의 사퇴로 청와대가 예상한 인사 마무리 예정 기한도 이미 지났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지난 14일 기자들에게 인선 과정의 어려움과 그간의 상황 등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지난 18일까지 인사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남은 내각 인사 발표가 언제 이뤄지느냐는 질문에 "(예상보다 인사가) 늦어지고 있다"며 "구체적인 일정은 보고받지 못했고, 법무부 장관은 엊그제 리셋(다시 시작)됐고, 산업부와 복지부 장관은 검증 단계에 있기 때문에 인사추천위와는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한편 문재인 정부는 인사검증과 국회 인사청문회로 인한 부담을 덜기 위해 5대 원칙과 인사청문 제도 개선을 추진중이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문 대통령이 언급한 5대 원칙의 우선순위와 기준을 구체화하는 작업에 나선 데 이어 문 대통령은 80%를 넘나드는 호의적인 여론을 등에 없고 이번 인사 마무리 후 인사청문 제도 자체를 바꿔야한다며 우회적으로 국회를 압박하고 있다. 결국 인사 기준과 그 과정에 대한 부담을 덜겠다는 의미로도 분석된다.
정치권 일각에선 새 정부가 추진하는 인사기준 완화가 국민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고위공직자에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가 도덕성임에도 이를 완화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도덕성은 절대 기준이 아니다'는 인식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고위공직자 배제 5대 인사 원칙을 구체화 작업 중인 국정기획위의 김태년 부위원장은 이에 대해 "그런 우려는 없다"며 "도덕성 약화 우려는 보기 나름일텐데, 인사 기준을 완화시키자는 게 아니고 현실에 맞게 조정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정경환 기자 (hoa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