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뉴스핌 이영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6일 독일 통일의 현장인 수도 베를린에서 북한을 향해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으로 돌아가자는 대한민국 새 정부의 '한반도 평화 구상(베를린 구상)'을 발표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초청으로 독일을 공식방문중인 문 대통령은 이날 낮 12시 옛 베를린시청에서 열린 쾨르버재단 초청연설을 통해 "나는 오늘, 베를린의 교훈이 살아있는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 새 정부의 한반도 평화 구상을 말씀드리고자 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후(현지시간) 베를린시청 Bear Hall에서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을 하고 있다.<베를린(독일)=뉴시스> |
문 대통령이 이날 발표한 '베를린구상'은 지난 4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성공으로 인해 일부 내용이 수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지난 4일 연설문 최종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 보고가 이뤄졌다"며 "연설문을 보던 대통령이 초안을 덮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고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또 이날 오전 베를린 현지에서 열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한중정상회담에서도 자신의 '한반도 평화구상'에 대한 시 주석의 동의를 확인한 후 이를 연설문에 최종 반영했다.
문 대통령은 먼저 "이곳 베를린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 화해·협력의 기틀을 마련한 '베를린 선언'을 발표한 곳"이라며 "여기 알테스 슈타트하우스(Altes Stadhaus)는 독일 통일조약 협상이 이뤄졌던 역사적 현장"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아울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우리 국민들에게 베를린은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과 함께 기억된다"며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은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고, 분단과 전쟁 이후 60여 년간 대립하고 갈등해 온 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의 길로 들어서는 대전환을 이끌어냈다. 그 뒤를 이어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의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이정표를 세웠다"고 소개했다.
나아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국제협력도 추진해 나갔다. 그 기간 동안 6자회담은 북핵문제 해결 원칙과 방향을 담은 9.19 성명과 2.13합의를 채택했습니다. 북미 관계, 북일 관계에도 진전이 있었다"며 "나는 앞선 두 정부의 노력을 계승하는 동시에 대한민국의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담대한 여정을 시작하고자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도전은 북핵 문제"라며 "북한은 핵과 미사일 도발을 계속하며 한반도와 동북아,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히 바로 이틀 전에 있었던 미사일 도발은 매우 실망스럽고 대단히 잘못된 선택"이라며 "유엔 안보리 결의를 명백히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를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무엇보다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모처럼 대화의 길을 마련한 우리 정부로서는 더 깊은 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북한의 이번 선택은 무모하다. 국제사회의 응징을 자초했다. 북한이 도발을 멈추고 비핵화 의지를 보여준다면,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받을 수 있도록 앞장서서 돕겠다는 우리 정부의 의지를 시험하고 있다"면서 "나는 북한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지 않기를 바란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고 국제사회와 협력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한반도 비핵화는 국제사회의 일치된 요구이자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절대 조건입니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결단만이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길이라는 뜻"이라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그래서 나는 바로 지금이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고, 가장 좋은 시기라는 점을 강조한다"며 "점점 더 높아지는 군사적 긴장의 악순환이 한계점에 이른 지금, 대화의 필요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중단되었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본여건이 마련되었다는 점도 중요하다"며 지난달 30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확인한 ▲평화적 방식의 한반도 비핵화 달성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 ▲한반도 위기 타개 위한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통일 환경조성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 및 남북대화 재개 지지 등의 성과를 설명했다.
또 이날 오전에 개최된 한중정상회담에서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도 같은 공감대를 확인했다"고 귀띔했다.
문 대통령은 "나는 오래 전부터, 우리가 운전석에 앉아 주변국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반도 문제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제 비로소 그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며 "이제 북한이 결정할 일만 남았다. 대화의 장으로 나오는 것도, 어렵게 마련된 대화의 기회를 걷어차는 것도 오직 북한이 선택할 일"이라고 촉구했다.
이어 "그러나 만일, 북한이 핵 도발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더욱 강한 제재와 압박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될 것"이라며 "나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의지를, 북한이 매우 중대하고 긴급한 신호로 받아들일 것을 기대하고 촉구한다"고 힘줘 말했다.
◆ 문 대통령 '한반도 평화구상' 실현을 위한 다섯 가지 실천전략은?
문 대통령이 이날 한반도의 냉전구조 해체와 항구적 평화정착 구축을 위해 발표한 새 정부의 대북정책방향인 '베를린 구상(한반도 평화 구상)'은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남북이 이미 합의한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으로 돌아가 핵과 전쟁의 위협이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남과 북이 상호 존중의 토대 위에 맺은 이 합의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절실하다. 남과 북이 함께 평화로운 한반도를 실현하고자 했던 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나는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한다. 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인위적인 통일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통일은 쌍방이 공존공영하면서 민족공동체를 회복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통일은 평화가 정착되면 언젠가 남북간의 합의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일입니다. 나와 우리 정부가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평화입니다.
둘째, 단계적·포괄적 접근방법을 통한 북핵문제의 근원적 해결로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전쟁 위기설'이 한반도와 세계를 휩쓸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은 세계의 화약고와도 같다"며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와 평화체제 구축, 북한의 안보·‧경제적 우려 해소, 북미관계 및 북일관계 개선 등 한반도와 동북아의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셋째, 남북합의 법제화 등 평화의 제도화를 통한 항구적인 평화 체제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1953년 이래 한반도는 60년 넘게 정전 상태에 있다. 불안한 정전 체제 위에서는 공고한 평화를 이룰 수 없다. 남북의 소중한 합의들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거나 깨져서도 안 된다"며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종전과 함께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북핵문제와 평화체제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으로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넷째, 남북 간 군사분계선을 경제벨트로 새롭게 잇는 등의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그리겠다고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한이 함께 번영하는 경제협력은 한반도 평화정착의 중요한 토대"라며 "나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가지고 있다. 북핵문제가 진전되고 적절한 여건이 조성되면 한반도의 경제지도를 새롭게 그려 나가겠다"고 역설했다.
이어 "끊겼던 남북 철도는 다시 이어질 것이다. 부산과 목포에서 출발한 열차가 평양과 북경으로, 러시아와 유럽으로 달릴 것이다. 남·북·러 가스관 연결 등 동북아 협력사업들도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며 "남과 북은 대륙과 해양을 잇는 교량국가로 공동번영할 것이다. 남과 북이 10.4 정상선언을 함께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 그때 세계는 평화의 경제, 공동번영의 새로운 경제모델을 보게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다섯째는 이산가족 상봉과 하천범람, 산불 등 남북 간 공조가 필요한 비정치적 교류협력 사업을 정치·군사적 상황과 분리해 일관성을 갖고 추진해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한의 교류협력 사업은 한반도 모든 구성원의 고통을 치유하고 화합을 이루는 과정이자 안으로부터의 평화를 만들어가는 일"이라며 "남북한에는 분단과 전쟁으로 고향을 잃고 헤어진 가족들이 있다. 그 고통을 60년 넘게 치유해주지 못한다는 것은 남과 북 정부 모두에게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개탄했다.
아울러 "분단으로 남북의 주민들이 피해를 보는 일들도 남북한이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한다"며 "북한의 하천이 범람하면 남한의 주민들이 수해를 입게 된다. 감염병이나 산림 병충해, 산불은 남북한의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남북이 공동대응하는 협력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민간 차원의 교류는 당국 간 교류에 앞서 남북 간 긴장 완화와 동질성 회복에 공헌해 왔다. 민간교류의 확대는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어갈 소중한 힘"이라며 "다양한 분야의 민간교류를 폭넓게 지원하겠다. 지역 간의 교류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인간 존중의 보편적 가치와 국제 규범은 한반도 전역에서 구현되어야 한다"며 "북한 주민의 열악한 인권 상황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와 함께 분명한 목소리를 낼 것이다. 아울러, 북한 주민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인도적인 협력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 이산가족 상봉·북한 평창올림픽 참가·적대행위 중단·대화재개 제안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남북이 함께 손을 잡고 한반도 평화의 돌파구를 열어가야 한다"며 ▲이산가족 상봉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군사분계선 적대행위 중단 ▲남북 간 대화재개 4가지를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문 대통령은 "첫째, 시급한 인도적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라며 "올해는 '10.4 정상선언' 10주년이다. 또한 10월 4일은 우리 민족의 큰 명절인 추석이다. 남과 북은 10.4 선언에서 흩어진 가족과 친척들의 상봉을 확대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족적 의미가 있는 두 기념일이 겹치는 이 날에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개최한다면 남북이 기존 합의를 함께 존중하고 이행해 나가는 의미 있는 출발이 될 것이다. 북한이 한 걸음 더 나갈 용의가 있다면,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 성묘 방문까지 포함할 것을 제안한다"며 "이산가족 상봉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 적십자회담 개최를 희망한다"고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내년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와 관련해 "2018년 2월, 한반도의 군사분계선에서 100km 거리에 있는 대한민국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개최된다. 2년 후 2020년엔 하계올림픽이 동경에서, 2022년엔 북경에서 동계올림픽이 개최된다"며 "우리 정부는 아시아에서 이어지는 이 소중한 축제들을 한반도의 평화,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를 만들어가는 계기로 만들 것을 북한에 제안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스포츠에는 마음과 마음을 잇는 힘이 있다. 남과 북, 그리고 세계의 선수들이 땀 흘리며 경쟁하고 쓰러진 선수를 일으켜 부둥켜안을 때, 세계는 올림픽을 통해 평화를 보게 될 것"이라며 "세계의 정상들이 함께 박수를 보내면서,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시작을 함께 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에 대해 IOC에서 협조를 약속한 만큼 북한의 적극적인 호응을 기대한다"고 주문했다.
셋째, 군사분계선에서의 적대행위 상호 중단을 위해 "올해 7월 27일은 휴전협정 64주년이 되는 날"이라며 "이날을 기해 남북이 군사분계선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지한다면 남북 간의 긴장을 완화하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요청했다.
마지막으로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을 위한 남북 간 대화가 필요하다"며 "한반도 긴장 완화는 남북한 간의 가장 시급한 문제다. 지금처럼 당국자 간 아무런 접촉이 없는 상황은 매우 위험하다. 상황관리를 위한 접촉으로 시작하여 의미있는 대화를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피력했다.
나아가 "올바른 여건이 갖춰지고 한반도의 긴장과 대치국면을 전환시킬 계기가 된다면 나는 언제 어디서든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며 "핵 문제와 평화협정을 포함해 남북한의 모든 관심사를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을 위한 논의를 할 수 있다"고 여건에 기반한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했다.
[뉴스핌 Newspim] 이영태 기자 (medialyt@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