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성웅 기자] 우리 형사소송법은 적법하게 수집되지 않은 증거(독수)에 따라 발견된 제2차 증거(독과)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독 있는 나무에 독 있는 열매가 열린다'는 독수독과(毒樹毒果) 이론이다.
청와대에서 잇달아 박근혜 정부의 문건이 나오고 있다. 국정농단 '2막'이 올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문건의 증거능력에 대해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만약 청와대에서 발견된 '캐비닛 문건'들이 적법하지 않을 경우, 부적법 수집증거로 간주돼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 증거로 채택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가 민정수석실에서 찾아낸 것은 지난 2014년 6월부터 2015년 6월까지 만들어진 300여건의 문건과 메모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 문화 건전화와 같은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무수석실에서 발견된 1361건의 문건에도 삼성, 위안부 합의, 세월호, 국정교과서 추진, 선거와 관련된 적법하지 않은 내용들이 포함됐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실에서 발견된 문건에 대해 브리핑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
또 청와대는 20일 "국정상황실서 504개 문건이 발견됐는데, 2014년 3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작성된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청년 보수단체 지원 적극 방안 검토와 삼성물산 합병안 대한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방향, 서울시 청년수당 지급 시 교부세 감액 지시 내용이 포함됐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그동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 재판에서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한 특검과 검찰은 이 문건에 집중하고 있다. 청와대는 특검에 문건 일부를 넘겼으며, 검찰은 다시 이를 받아 조사 중이다.
국정농단 사태에서 '스모킹건(범죄의 결정적인 증거)'으로 떠오른 것이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의 업무수첩과 최순실씨의 태블릿PC 정도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캐비닛 문건은 공소유지에 새로운 무기가 될 수 있다. 검찰과 특검이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문건들이 증거 능력을 갖추기 위해선 몇가지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지난 2005년 검찰이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도청 테이프 사건'을 수사하면서, 비밀도청팀장 공모씨의 집에서 압수한 도청테이프의 증거 능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도청이라는 불법을 통해 얻은 증거였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청와대가 문건을 확보해 공개한 뒤 검찰에 넘긴 과정이 적법했는지 가려야 한다는 의미다. 일각에선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위반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7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발견된 박근혜 정부의 기록물들을 청와대가 대통령기록관 관계자에게 이관하고 있다. 청와대는 원본은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하고 사본은 검찰에 제출했다. [뉴시스] |
청와대는 문건의 존재를 공개하면서 "박근혜 정부가 대통령 지정 기록물 목록 자체를 비공개로 지정해 이번 문건이 대통령 지정물인지 판단하기조차 어렵다"면서 "다만, 자료에 비밀표기를 안해서 대통령 지정 기록물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판례를 보면 결재권자의 결재가 없는 결재 예정문서나 원본문서 외 추가출력물, 또는 복사본 등은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 한가지, 이번 문건을 재판에 증거로 제출했을 경우 증거가 되기 힘들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아직까지 문건의 작성자가 누구인지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법정에 증인을 세울 수 없다는 얘기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문건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 이재용 부회장이나 박 전 대통령 측에서 증거 채택을 거부할 가능성도 짙다. 안종범 전 수석의 수첩이 정황증거로 채택된 것처럼 문건의 내용 자체가 증거로 채택되기보다, 문건의 존재 자체만이 증거로 인정될 수도 있다.
[뉴스핌 Newspim] 이성웅 기자 (lee.seongwo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