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오승주 기자] 여당발 ‘증세논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법인세율과 고소득자 소득세율 인상을 주장하며 증세 논의를 공식화했다.
정부 내에서도 국회 재정위원인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이 ‘증세없는 복지’를 주장하는 세금 주무부서인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상대로 “국민을 속이지 말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당초 문재인 대통령의 ‘100대 국정과제’에 소요되는 재원 178조원을 ‘증세없이 하겠다’던 기획재정부는 민망한 처지에 빠졌다.
어느 나라든지 ‘세금을 올리는 문제’는 민감한 법. 하지만 선거와 국민인기를 염두에 둔 포퓰리즘 정책의 유혹에서 벗어나 제대로 증세논의가 이뤄져 결과를 도출할지 관심도 집중되는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했다. <사진=청와대> |
◆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증세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집권여당이 ‘증세’를 꺼내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대표)는 20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법인세 명목세율과 고소득자의 소득세 인상을 공식 제안했다. 연매출 2000억원 초과 기업에 25%의 법인세를 부과하는 최고세율 구간을 신설하고, 연소득 5억원 이상 고소득자의 세율도 현행 40%에서 42%로 올리자는 것이다. 추 대표는 법인세 인상으로 2조9300억원의 세수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도 ‘세금 주무부서’인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직설을 날렸다. 여당 소속의 국회 재정위원이기도 한 김 장관은 김 부충리를 상대로 “없는 지하경제 양성화하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라”며 “이제 국민에게 (증세의 불가피성을) 정직하게 이야기하고 토론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취임 이후 “올해 안에 소득세와 법인세 등 증세는 없다”고 공언했다. 이번 ‘100대 국정과제’에 들어가는 재원 178조원도 경기 활성화에 따른 자연 세수 증가분과 불필요한 정부지출을 줄이면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는 국정기획위원회의 입장에 발을 맞추는 행보를 보인다.
하지만 증세에 미적지근한 기재부 등 정부를 상대로 여당 대표와 여당 출신 장관이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작심발언을 하며 ‘정공법’을 펼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증세 논란은 정부가 군불을 때고 여당이 찬반을 확산시키면서 야당까지 동참해 이슈화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선거를 앞둔 여당은 표심에 민감한 영향을 끼치는 증세문제에 대해 반대하거나 미루는 것이 관례다.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시 ‘증세 논쟁’은 ‘정부 발제’ ‘여당 반대’의 대표적인 사례다. 증세를 화두로 꺼낸 노 전 대통령에 발맞춰 당시 재경부가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사실상 증세인 ‘1~2인 가구 추가공제 폐지’ 방안을 흘렸고, ‘맞벌이 세금폭탄’이라는 비난이 거세지자 여당(열린우리당)은 정부를 다그쳤다.
지방선거를 눈 앞에 두고 독신자와 맞벌이 부부에 대해 세금부담을 늘리는 것이 표에 어떤 영향을 줄지 뻔한 상황. 재경부는 결국 자료 유출에 대한 책임을 중견간부에게 물어 문책인사를 단행했고, 결국 ‘없던 일’로 일단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집권 초기 80%를 넘나드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를 감안해 정부 관계자들이 스스로 증세문제를 입 밖에 내는 것을 꺼리는 반면, 여당에서 적극 화두를 던지는 등 공수가 뒤바뀌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지방선거가 1년 가까이 남았고, 선거 이후 증세문제를 이슈화시키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고심 끝에 당정청의 교감 아래 ‘증세논란’이 표면화됐다는 관측도 있다.
◆ 수박 겉핥기식 증세 논의는 '안돼'
문제는 증세논의가 수박 겉핥기식으로 끝날지 여부다. 소득세의 경우 기획재정부는 증세없이 최고소득세율 과표 구간을 기존 5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경우 세수 확보는 1700여 억원에 그쳐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근본적으로는 소득세의 경우 고소득자의 세율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 2명 가운데 1명이 ‘면세자’인 소득세 체계를 전반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21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과 한국경제연구원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2013년 32.2%에서 감소하다 2014년 48.1%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국민 절반이 세금을 내지 않는 셈이다.
2013년 ‘연말정산 대란’으로 급격히 늘어난 세금에 대한 조세저항이 거세지자 특별공제제도를 확대하면서 이 같은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일본(15.8%)과 독일(19.8%) 등 주요 선진국의 면세자 비율과 비교하면 소득세 체계가 상당히 뒤틀려 있다는 평가다.
노영훈 조세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은 "사업소득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많이 제기되며 근로소득세를 깎아주는 쪽으로 정책적 노력이 집중됐다"면서 "불균형한 부분이 있으면 낮은 부분을 끌어올렸어야 했는데, 반대로 정책이 시행됐다"고 말했다.
소득세 뿐 아니라 부가가치세, 법인세 등 ‘국가 3대 세목’ 전반에 관한 논의가 이번 기회에 심도있게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 참에 조세제도 전반을 합리적으로 손질할 필요가 있다”며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많이 부담하는 것도 좋지만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과세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오승주 기자 (fair7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