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겨레 기자] "가상현실(VR)로 체험하는 롤러코스터, 미로 찾기는 저 같은 시각장애인에게 남 얘기였어요. 그런데 릴루미노 앱을 실행하고 '기어 VR'을 쓰니 다른 세상이 보였습니다. 뿌옇게 보이던 영상이 또렷하게 다가오면서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죠."
2급 시각장애인 김창현 씨(한빛맹학교 교사)는 18일 시각 보조 애플리케이션 '릴루미노'를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빛을 되돌려준다'는 뜻의 라틴어인 '릴루미노'는 그 의미처럼 일상적인 즐거움을 장애인들에게 돌려주고 있었다. 삼성전자가 키우는 사내벤처 C랩을 통해 또 다른 혁신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릴루미노 독서 효과 <사진=삼성전자> |
릴루미노를 개발한 조정훈 CL(크리에이티브 리더)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삼성전자에서 통신 표준 규약(프로토콜)을 분석하던 연구원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읽은 기사가 새로운 계기가 됐다. '시각장애인 여가활동은 92%가 TV시청'이라는 기사가 그것이다. 시각장애인 중 완전히 안 보이는 전맹은 14%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저시력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시력자가 가상현실 헤드셋 '기어 VR'을 착용하고 릴루미노를 실행하면 뿌옇게 보이던 시야가 또렷해진다. 글자나 사물의 윤곽선을 강조하고 밝기와 대비를 조정하거나 색을 반전시키는 원리다. 릴루미노는 지난 2월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인 MWC(모바일월드콩그레스)에 참가해 호평을 받았다.
세계 무대에 선 C랩 출신 스타트업은 릴루미노뿐이 아니다. 산업 건축용 진공 단열 패널을 설계·생산하는 '에임트'는 40억원 규모의 해외 투자를 유치했다. 허밍으로 작곡하는 앱을 개발한 '쿨잼컴퍼니'는 최근 세계 3대 음악 박람회 '미뎀랩 2017'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8일 삼성전자 C랩 프로그램에 참여한 '릴루미노' 팀의 조정훈 CL(Creative Leader)이 시각 보조 애플리케이션 '릴루미노'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
3~5명으로 구성된 작은 팀이 빠른 시간 안에 세계 무대를 누빌 수 있었던 배경은 C랩의 운영방식에 있다. 삼성전자 임직원이 C랩에 파견되면 1년 동안은 근무하던 사업부와 단절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실제로 C랩 직원들은 법정 의무 교육을 제외하면 직무 교육 조차 받지 않는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사업화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서다.
조 리더는 "아이디어가 있어도 소속 사업부 업무가 있으면 구체화하기 어려운데, C랩 제도가 있어서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근무 장소와 시간 등 모든 부분에서 자율권을 보장한다. 삼성전자가 올해 시작한 직급 폐지와 '님' 호칭도 2013년 C랩에서 먼저 도입한 제도다.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연차와 상관없이 수평적으로 의견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삼성전자 C랩은 2012년부터 현재까지 총 180개 과제를 수행했고, 750명의 임직원이 참여했다. 이가운데 25개 C랩 과제가 스타트업으로 독립했다.
이재일 삼성전자 창의개발센터 상무는 "삼성전자의 일사분란한 조직문화에 스타트업 C랩의 혁신적이고 유연한 문화를 적절히 섞기 위해 C랩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김겨레 기자 (re970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