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촛불 혁명'으로 탄생했다고 자부하는 문재인 정부는 서민을 위한 금융을 강조하고 있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를 비롯해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소멸시효 완성채권 소각 등 일련의 정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서민을 위한 정책이 오히려 서민을 옥죄는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보다 세밀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뉴스핌=이지현·김은빈 기자]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법정 최고금리를 연 34.9%에서 연 27.9%로 인하했다. 그러자 지난해 3월부터 올해 6월까지 신용대출을 취급하는 대부업체 수가 79개에서 49개로 38% 감소했다. 17개사가 폐업하고 13개사는 신용대출을 중단했다. 이들이 취급했던 대출 자산은 3424억원 규모다.
최고금리를 인하하기 전인 2015년 9월 현재 대부업체를 이용한 7~10등급의 저신용자는 94만명이었다. 최고금리 인하 후 지난해 말 이 수는 84만명으로 10% 가까이 줄어들었다. 반면 불법 사금융 이용자는 같은 기간 33만명에서 43만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산됐다.
사채업자를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여와 양성화한 게 대부업체다. 고금리 대출을 써야하는 서민 입장에선 대부업체를 이용해야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최고금리 인하 정책은 결과적으로 이 보호망 안에서 10만명을 몰아냈다.
◆최고금리 인하, 법 보호망에서 밀려나는 서민
정부가 법정 최고금리를 현행 27.9%에서 24%로 낮추기로 하면서 대부업 축소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대부업체를 이용하던 저신용자 서민들이 사채 시장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내년 1월에 법정 최고금리가 현행 연 27.9%에서 연 24%로 내려간다. 대부업계에선 또다시 법 보호망에서 밀려나는 서민들이 양산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대부금융협회가 지난 7월 신용대출을 취급하는 회원사 35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최고금리가 25%로 인하된다고 가정하면 이들 대부업체들의 신규대출금액은 2016년 7조435억원에서 5조1086억원 수준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왔다. 신규 대출자 수는 같은 기간 124만명에서 34만명이 감소한 90만명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최고금리 24%가 실행되면 34만명보다 더 많은 수의 저신용자들이 대부업체를 이용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물론 최고금리가 내려가면 대부업체를 비롯해 저축은행, 카드업계의 대출금리 수준도 함께 내려갈 수밖에 없다. 이에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는 서민들의 금리 부담이 한층 줄어들 전망이다. 문제는 최고금리가 내려가면 원가를 맞추지 못한 대부업체들이 폐업을 한다는 데 있다. 대부업체들이 폐업을 하면 이를 이용하던 7등급 이하의 저신용자들은 사금융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할 수 있다.
대부금융협회는 "최고금리가 인하되면 서민들의 이자 부담은 1481억원 정도 줄지만, 34만명이 제도금융에서 대출을 못 받고 불법 사금융으로 몰리는 부작용이 있다"면서 "불법초과이자나 단속비용까지 고려하면 최고금리 인하의 실익보다 부작용이 훨씬 크다"고 지적했다.
통상 대부업체들의 대출 원가는 25~27%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대부업체들은 저축은행 등에서 자금 조달을 해오기 때문에 조달 금리만 6%대에 달한다. 여기에 갖가지 비용과 대출 리스크 등을 감안하면 대출 금리가 최소 25%는 돼야 원가를 맞출 수 있는 것.
이민환 인하대학교 교수는 "대부업체들의 조달금리가 6.5%정도인데, 원가를 따지면 대출금리가 25%는 돼야 그나마 대형 대부업체들이 견딜 수 있는 마지노선이 될 것"이라며 "더 나아가 금리를 20%로 낮추게 되면 조달금리가 바뀌지 않는 이상 시장에서 대부업체들이 자금 공급을 할 수 없을 것은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 "문제 인식하고 있으나 금융 철학의 문제"
정책을 추진 중인 당국에서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당국 관계자들도 최고금리가 24%까지 내려가면 정말 대부업체들이 영업을 이어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리가 24%, 더 나아가 20%로 내려가면 대부업체들의 영업 유지가 힘들어지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앞으로 폐업을 하는 업체들이 늘거나,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종전처럼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에서 상환능력이 없는 저신용자들이 높은 금리를 내고 대부업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만큼 대부업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부업 이용자 중 저신용자는 특히 상환능력이 많이 떨어지는데도 높은 금리를 지불하고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인데, 이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긴 어렵다"면서 "다만 최고금리 인하로 이들의 자금이 경색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안의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이지현 김은빈 기자 (jh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