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역사 위안부 할머니의 수요집회…25년9개월 1300회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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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황유미 기자]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기이치 전 일본 총리 방한을 앞두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실인정' '공개사과'를 요구하며 시작된 집회. 정기수요집회의 첫 시작이다. 25년 9개월이 지나 수요집회는 13일 1300회차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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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290차 정기 수요집회에서 학생들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 국민 관심 제고, 가장 큰 성과

1992년 1월 8일에 시작된 집회는 1995년 일본 한신 대지진 때를 제외하고는 매주 진행됐다. 당시에는 수요집회 대신 지진 희생자를 위한 추모집회를 열었다.

1300회의 정기 수요집회가 꾸준히 진행되면서 이룬 가장 큰 성과는 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인식 변화다. 국민의 관심도 높아졌다.

윤미향 정대협 공동대표는 이날 수요집회에서 "첫 수요집회를 시작했을 당시에는 한국 사회조차 피해 할머니들을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며 "한국사회는 변했고 위안부 피해자들을 향해 손가락질 하지 않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밝혔다.

실제 수요집회가 진행되던 초기에는 정대협 관계자들을 포함해 20~50명 참여했다. 2011년 12월 1000번째 수요집회를 기점으로 참석자들은 급격히 증가했다.

1000차 수요집회 때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다시는 위안부 문제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평화의 소녀상도 건립됐다. 이런 관심에 힘입어 13일 기준 평화의 소녀상은 전국에 총 80개가 세워졌다.

정대협에 따르면,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가 체결된 이후에는 수요집회 참석자들이 1000명 이상으로 늘어나는 경우가 있기도 했다.

양노자 정대협 사무처장은 "수요집회의 가장 큰 성과는 위안부 문제를 미래세대에 알릴 수 있었다는 점"이라며 "예전에는 위안부 문제가 '부끄러운 역사'로 여겨졌다면 지금은 '사과를 받아야하는 문제'로 많은 분들이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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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제1300차 정기수요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황유미 기자

◆ 진정한 평화를 향해

25년 8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역사의 산증인'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 239명(여성가족부 등록 기준) 중 204명이 별세했다. 35명의 할머니만이 생존해 계시다.

1300차 수요집회 참석자들은 고령인 피해 할머니들을 생각해서라도 올해 꼭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와 배상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밝혔다.

전남 무안에서 수학여행으로 수요집회를 방문했다던 A양은 "수요집회에 처음 와보는데 실제로 와보고 할머니들을 보니 위안부 문제가 더 가슴 깊이 와닿는다"며 "일본의 공식 사과가 올해 안에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인솔한 백종연 교사는 "가장 궁극적으로는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받는 게 먼저다"며 "올해 일본의 용서를 받은 후 그 다음에 배상 문제 등을 논의해야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점심시간 수요집회를 잠시 방문한 회사원 송모(여·29)씨는 "할머니들 나이가 90세에 가까운 고령으로 알고 있다"며 "지금 생존해 계시는 분들이라도 직접 사과를 받을 수 있도록 일본이 얼른 태도를 좀 바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요집회를 주최하는 정대협은 일본정부에 ▲전쟁범죄 인정 ▲진상규명 ▲공식사죄 ▲법적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교과서에 기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을 요구하고 있다.

정대협 측은 "우리 곁에는 단 35명의 피해자만이 남아있다"며 "수요시위가 1300번의 울림이 되기까지 수요시위를 지킨 시민들이 또 다시 모여 위안부 피해자들이 바라는 평화가 오는 그날까지 함께 할 것이다"고 밝혔다.

 

[뉴스핌 Newspim] 황유미 기자 (hume@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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