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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톡] '아이캔스피크' 김현석 감독 "위안부와 코미디? 전달 방법일 뿐이죠"

기사등록 : 2017-09-20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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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장주연 기자] 따뜻한 인간애로 교감하는 스토리. 싱거워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유머. 우회적이나 정확하게 꽂히는 메시지. 김현석(45) 감독이 자신의 장기를 제대로 살린 신작 ‘아이캔스피크’로 극장가에 돌아왔다.

21일 개봉하는 ‘아이캔스피크’는 구청 블랙리스트 1호 도깨비 할매 옥분(나문희)와 원칙·절차만 중시하는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 상극의 두 사람이 영어로 엮이게 되면서 시작된다. 알려졌다시피 지난 2014년 CJ문화재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기획안 공모전 당선작을 각색한 작품. 2007년 미 하원의회 공개 청문회를 통해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이 통과된 실제 사건이 모티브가 됐다. 

“사실 뒤에 반전이 없었다면 안했을 거예요. 같은 정공법이었다면 흥이 나지 않았을 거고요. 성향상 영화를 만들 때나 실생활에서나 직설법을 안 좋아해요. 예를 들어 효도가 주제이면, 러닝타임 내내 ‘효’자도 안나오지만, 나올 때 부모님께 전화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좋은 영화라 생각하죠. 이 작품 역시 그런 돌려 말하기 방식이 마음에 들었어요. 실제 저희 영화는 60년 전 이야기는 플래시백으로 잠깐 나와요. 할머니들이 피해자인 건 맞지만, 그런 시각보다 그냥 우리 곁에 사는 일반적인, 평범한 할머니 느낌을 주려고 했죠.”

이러한 접근 방식은 ‘아이캔스피크’만의 가장 큰 차별점이기도 하다. 김 감독의 말대로 ‘아이캔스피크’는 그간의 위안부 소재 영화와 달리 정공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나라한 묘사는 최소화했고, 보다 우회적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코미디를 버무렸다. 5·18광주민주화운동를 코미디에 녹인 전작 ‘스카우트’(2007) 경험이 도움이 됐다.

“아픈 역사를 무조건 그렇게 다뤄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반대로 코미디가 무조건 웃기기 위한 것도 아니죠. 여기서는 코미디를 진실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사용한 거예요. 코미디를 택했다고 역사를 우습게 생각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그저 편하게 접근하고 싶었을 뿐이죠. 물론 그 균형을 맞추는 건 중요했어요. 시나리오 받았을 때도 전반 코미디, 후반 직진이었는데 제 식대로 코미디 코드를 살짝 바꿨죠. 약간 나른하고 느슨하고 한 박자 느리게. 비밀이 밝혀진 후에도 너무 무겁지 않도록 신경을 썼고요.”

김 감독은 영화 속 감동이, 그리고 웃음이 잘 버무려질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배우들 덕이라고 했다. 실제 풍성한 표현력으로 관객을 울린 나문희와 그런 나문희 옆에서 능수능란하게 강약조절을 해내는 이제훈의 열연은 단연 ‘아이캔스피크’의 백미다. 

“옥분은 읽었을 때 그냥 딱 나문희 선생님이었어요. 선생님 얼굴을 봤을 때 슬픔, 과거보다 친근함이 먼저 느껴지잖아요. 그걸 역으로 이용한 거죠. 제훈 씨 같은 경우에는 편집하면서 더 놀랐어요. 영화 특성상 선생님 칭찬은 쉬워요. 근데 제훈 씨는 표 안나게 잘 해야 해요. 사실 두 분이 연기 스타일이 달라요. 선생님은 리듬감이 있고 즉흥적인 느낌이 있다면, 제훈 씨는 로직대로 클래식한 연기를 하죠. 근데 그게 옥분의 감정을 묵직하게 받아줬어요.”

김 감독은 두 사람이 만들어낸 수많은 장면 중 특히 청문회 신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 중 “하와유 (How are you?)”라는 민재의 물음에 “아임 파인 땡큐 (I'm fine thank you)”라고 답하는 옥분의 모습이 그가 꼽는 명장면. 이와 함께 김 감독은 옥분의 대사에 유난히 “아임 파인 땡큐”가 많은 이유를 덧붙여 설명했다. 

“할머니들이 꿋꿋하게 사시는 모습이 역사라고 생각해요. 우리 영화에 ‘아임 파인 땡큐’가 자주 나오는 것도 그래서죠. 물어봐 줘서 고맙다는 것, 나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것. 어렵지 않은 그 흔한 말에 중의적 의미가 담겨있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하는 거죠. 뒤늦게 알게 된 우리의 최선. 이제라도 알아서 죄송한 마음으로 ‘하와유’라고. 전 시나리오 읽었을 때도, 지금도 그 장면이 가장 뭉클해요.”

영화 속 또 다른 메시지 이야기도 이어졌다. 김 감독은 각색 과정에서 정치인, 공무원 등을 겨냥한 풍자를 곳곳에 넣었다. 집무실을 비우고 골프를 치는 구청장(이대연) 같은 경우에는 세월호 참사 당시 자리를 비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연상케 해 눈길을 끌었다. 

“각색할 때 탄핵 문제가 터졌어요. 그래서 이 정도는 괜찮겠다 싶어서 살짝 넣었죠. 현실에서는 더 한 일이 일어났으니까. 하지만 공무원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려던 건 따로 있었죠. 지금의 우리와 연결하려 했거든요. 극중 박철민 형이 공무원의 자세를 말하면서 ‘나대지 마라, 그러면 중간이라도 간다’고 하잖아요. 그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대하는 저를 포함한 우리의 모습이죠. 편집됐지만, 민재가 7급 면접 볼 때 그걸 깨달으면서 말해요. ‘가만히 있는 게 잘한 건 아닙니다’라고. 우리한테 하는 이야기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김 감독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애써 미소 짓던 그에게 이 영화로 관객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김 감독은 “잊지 말라”고, 그리고 “잊지 말자”고 했다.

“분노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감정은 오래가지 못하죠. 일본은 계속 한일문제로 축소해서 개기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무뎌지는 세대가 오겠죠. 그게 일본이 바라는 거고요. 영화를 만들면서 이 문제는 장기전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다음 세대가 이 문제를 잊지 않게끔 하자 싶었죠. 내 동생, 그리고 또 다음 동생에게 환기하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몰라서 그랬다는 게 면죄부가 될 수는 없죠. 뒤늦게 알아서 죄송한 마음은 별개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연결고리가 돼서 이 문제가 잊히지 않게 하자는 겁니다.”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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