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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 단상] 파두. 그 여운

기사등록 : 2018-01-1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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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흔히 보이는 것들로 뫼비우스적, 그 이상의 상상 여행을 하려 한다. 주변의 사물들엔 저마다 독특한 내력이 숨어 있고 어떻게 빚느냐에 따라 보석이 되기도 하고 나침판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출발한 여행의 과정에 어떤 빛깔의 풍경이 나타날지, 그 끝이 어디까지 다다를지 필자 자신도 설레인다. 인문학의 시대라고 하는데 인문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 메타적 성찰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사물과 풍경, 시대와 인문을 두루 관통하면서 색다르면서도 유익한 여행을 떠나려 한다.

아모르 파티(Amor Fati)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그만큼 우리들의 운명이 위험에 처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인 저 말을 한 니체가 느꼈을 당시의 위험성과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음악을 파두(Fado)라고 할 수 있다. 파두는 운명 즉 아모르 파티(Fati)에서의 파티와 같은 뜻이다. 모두 라틴어 파툼(Fatum)에서 나왔다.
포르투갈은 유럽에서도 독특한 나라이다. 스페인보다 먼저 대항해를 시작해서 한때는 강국이었지만 쇠퇴해 지금은 유럽의 변방에 속하고 있다. 파두에 드리운 어둑한 음조나 슬픔의 내음, 뭔가를 향한 한없는 갈구는 그런 면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바다를 끼고 사는 나라이기에 뱃사람들의 고뇌와 그들을 멀리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의 슬픔과 아픔 역시 진하게 배어 있다. 우리나라의 한의 정서와도 잘 통해 파두에 대한 마니아층도 우리나라에 두터운 편일 것이다. 파두의 대가인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검은 돛배’나 ‘어두운 숙명’을 듣고 있으면 그런 서정에 잠겨들곤 한다. ‘당신이 탄 검은 돛배는 밝은 불빛 속에서 너울거리고, 당신의 지친 두 팔로 나에게 손짓하는 것을 보았어요. 바닷가 노파들은 당신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죠.’ 검은 돛배의 가사 일부분이다.

포르투갈과 이베리아 반도에 같이 묶여있는 나라가 스페인이다. 두 나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대항해 시대를 선두적으로 열었으나 쇠퇴해 유럽에서 늦게까지 독재국가로 남았던 것도 비슷하다. 한때는 포르투갈이 스페인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그런 이유 외에도 민족성, 음식, 언어 등등에서 다른 것 같다
포르투갈에 파두가 있다면 스페인엔 플라멩고가 있다.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사람들. 집시, 유대인, 아랍인 등등의 민요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플라멩고 역시 파두 못지않은 장중함과 비애, 죽음 같은 엄숙함도 배어 있다. 그런 묵중한 플라멩고 외에도 스페인 특유의 낭만성과 즐거움을 담은 가벼운 플라멩고도 있다.

파두와 플라멩고 모두 민속 음악에 속한다. 클래식과 대중가요와 또다른 맥락을 지니고 있는 것이 민속 음악이다. 클래식에 조예가 깊은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클래식엔 다른 음악 장르에 없는 것이 있다고 한다. 두가지 이상의 멜로디가 정교하게 전개되기에 그 사이의 화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은 감상법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클래식에 좀더 접근한 기분이었다. 클래식을 듣는 데에 인내가 필요하기도 한데 화음에 대한 이해와 함께 그 멋을 안다면 인내는 곧 향연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물론 민속 음악이나 대중가요가 그런 복합성 없이 단순율만으로만 짜여진 것은 아니다. 민속음악에도 돌림노래도 있고 박자 어긋나게 하기 등등 수많은 기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고의 화음을 자아내는 복합성에서는 클래식을 따라갈 수 없을 듯하다.
클래식은 바흐 이후이고 대중가요는 대중의 출현과 연결되는 것이니 셋 중에 민속 음악이 역사가 가장 깊다.

음악의 역사를 다룬 SNS 상의 전문가의 글에서 고대엔 두가지 종류의 음악이 있다고 쓴 것을 읽었다. 하나는 미(美)의 음악이고 또 하나는 추(醜)의 음악이다. 첫 번째는 절로 이해가 갔지만 두 번째는 생경하고 당혹스러웠다. 글을 읽어가면서 무릎을 칠 정도의 느낌이 왔다. 설명에 따르면 고대에는 사람의 몸에 들린 악령을 쫒는 일환으로도 음악이 쓰였다는 것이다. 그때의 음악은 일부러 추하고 역겹고 괴음을 지르고 하는 식이다. 이해가 되며 그럴 것 같았다. 그 이야기는 내게 음악에 대한 또다른 성찰을 일으켰으며 내 마음 한켠에 지금도 진한 여운으로 남아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그런 양면성을 타고 음악이 흘러왔을 것이다. 아마도 미의 음악이 주류가 되어왔을테고 추의 음악은 비주류이거나 도태되었을 것 같다. 아니면 주술이나 무속 같은 영역에서 유지되거나 변형되었을 것이다. 바그너의 음악에서 그것이 부분적으로나 변형된채 재현된 면이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음악보다는 연극이나 영화의 발명 이후엔 영화에서도 그런 면은 잘 보이고 무엇보다도 문학에선 더욱 그럴 것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문학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니까.
음악은 그렇듯 다른 예술 장르들과 복잡한 관계를 이루며 긴 강처럼 흘러왔을 것이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면 아마도 모든 곳에 민속 음악이라고 후대에 이름붙인 음악들이 지어지고 불렸을 것이다. 이탈리아의 칸초네, 브라질의 삼바, 아프리카의 음악, 중국의 음악, 일본의 엔까 등등 세계의 아마도 모든 나라에 고유의 민속 음악이 있을 것 같다. 음악이 없는 곳도 있을까.

사람들의 실생활은 음악에 담길 수 없는 성질의 것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전쟁, 흉년, 기아, 전염병,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 등등 인류의 역사는 참혹한 것들만 열거하면 상상이 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민속 음악은 그러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의 일부를 그 고장 고유의 가락에 실어 그나마 풀어주고 취하게 했을 것이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왜 운명이라는 이름이 붙은 파두라는 노래에 그토록 열광적이었을까. 어쩌면 운명이라는 주제는 포르투갈만이 아니라 수많은 민속 음악의 주요 주제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아말리아 로드기게스의 파두는 운명에 걸맞도록 마음 속의 어둑한 심금을 울린다. 마리짜(Mariza)라는 이름의 리스본 출신 가수는 아말리아 로드기게스를 이어받아 파두를 세계적으로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물론 나는 파두나 플라멩고 같은 이베리아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니다.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작곡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란 노래에서 시작된 수필이 그곳을 떠나 남미, 북미, 중동의 음악을 거쳐 유럽의 클래식에 머문 다음에 스페인과 더불어 이베리아 반도의 한 축인 포르투갈의 음악에 이르렀다. 모두 깊이가 엷은 글이지만 그런 식으로라도 나름의 음악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정초부터 운명이니 하는 무거운 주제의 음악으로 나가는 것이 분위기가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운명도 중요하고 운명을 사랑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며 타인들의 운명을 헤아리는 것 역시 중요하기에 파두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이명훈(소설 ‘작약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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