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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톡] '네버 더 시너' 이도엽 "저도 화나요, 그래도 이제는 얘기해 봐야죠"

기사등록 : 2018-03-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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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글 황수정 기자·사진 이윤청 수습기자] 아무 말 없이 무대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내뱉기까지 오랜 침묵을 견뎌내야 하지만 존재만으로도 극의 무게가 달라진다. 배우 이도엽(45)이 그렇다.

이도엽은 현재 연극 '네버 더 시너'(Never The Sinner)에서 변호사 대로우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작품은 1920년대 초반, 미국 시카고에서 19세 젊고 부유한 청년 레오폴드와 롭이 어린 생명을 살해 유기한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사형이 아닌 종신형을 받은 결과를 통해 사형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깊이와 어둠 때문에 관객들도 한걸음 떨어져서 보시는 것 같아요. 그래도 관객들이 상당히 잘 따라오시는 것 같아요. 시공간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고, 극적구조가 일반적인 것들과 달라 힘들 수도 있어요. 저희들은 어렵게 분석해서 파악하고 연기하는데, 처음 보시는 건데도 너무 잘 따라와주셔서 감사해요. 대한민국에서 사형제를 어떤 시간으로 봐야하는지, 이제는 좀 화두에 올려서 깊이 얘기를 나눠야할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변호사 대로우는 두 사람의 변호를 맡아 사형이 아닌 종신형을 이끌어낸 인물이다. 이 과정에서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Hate the sin, never the sinner)'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앞서 프레스콜 당시 이도엽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죄인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매일 질문해요. 수치로 매길 순 없지만 어느 정도까지 미워하고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하죠. 개인적으로 레오폴드와 롭을 변호하는게 힘들어요.(웃음) 다만 저들이 내 자식이라면 어떨까, 두 사람이 자라나는 과정에서 뭔가가 어긋나버린 거라 생각해요. 지금 우리 사회도 뭔가가 어긋나버린 상태에서 달려왔고, 때문에 이 작품이 불편하게 다가갈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강요하거나 설득하지 않으려고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으니까.(웃음)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분명히 이들은 잘못을 했지만 왜 그렇게 됐는지 고민을 깊히 해봐야 할 것 같아요."

그가 힘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극중 변호를 하게 되는 레오폴드와 롭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살인 용의자로 법정에 섰음에도 시종일관 가벼운 태도와 웃음으로 일말의 동정심도 없애버린다. 그럼에도 이들을 변호한 대로우 변호사에 대해 이도엽은 "개인적인 윤리관 때문이지 않을까"라고 이해하려 한다.

"작품 안에서 연습을 하면서도 이 친구들이 대들거나 제가 하고자 하는 것과 반대로 갈 때 실제로 화가 나요. 그래서 '대로우'란 분은 어떻게 견뎌냈을까 생각을 해봤어요. 이 분은 두 사람의 살인에만 천착한 게 아니고 그 이후의 삶, 다음 세대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한 것 같아요. 현재를 넘어 뭐가 더 이상적일까 고민했기에 이들을 변호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개인적인 윤리관이 뛰어넘은 거죠. "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최후변론이다. 기나긴 침묵을 끝내고 대로우 변호사가 입을 여는 순간, 사실 예상보다 짧아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이도엽은 "더 길었다면 강요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살인을 저지른 두 사람에 대한 변호는, 그동안 관객들이 생각해왔던 가치관을 흔든다.

"마지막 최후변론을 할 때, 관객을 바라보면서 해요. 저희에게 관객이 재판장인 거죠. 그런데 저는 변론을 하면서 저한테 이야기를 던지는 것처럼 해요. 연기의 기술로 치면, 설득할 수도 있고 호소할 수도 있는데, 그냥 팩트만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하죠. 관객을 설득하려기 보다 사형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는 문제제기만 하는 거죠. 법정 공방이 더 길었다면 강요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도엽은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활발히 활동했지만, 최근에는 공연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네버 더 시너' 외에도 '앙리할아버지와 나' 지방 공연도 진행 중이다. "지친다는 건 사치"라고 말하는 그는 여전히 무대와 연기에 대한 생각이 많다.

"예전에는 모든 걸 완벽하게 만들려고 했다면, 지금은 동료들, 관객들이 제가 부족한 부분을 메꿔준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공연을 하는 것 자체가 더 편해지고 좋아졌죠. 이순재 선생님, 신구 선생님과 작품을 같이 했는데, 선생님들은 무대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씀하세요. 오히려 힘든 건 현실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요즘 젊은 친구들을 보면 부러워요. 배우는 은퇴가 없고 나이의 한계가 없다고도 하는데, 저는 반대로 그때 밖에 할 수 없는 역할이 있다고도 생각해요."

연기 경력 20년이 넘는 베테랑이지만, 자만하거나 과시하지 않는 배우 이도엽. 묵묵히 나아가는 그 길을 응원한다.

"배우로서는 큰 욕심이 없어요. 다른 수식어보다 그냥 '이도엽'이라는 이름 석자가 각인된 배우이고 싶은 거죠. 인간으로서는 맛있는 점심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점심을 먹는다는 건 따뜻한 사람이라는 의미니까요.(웃음)"

 

[뉴스핌 Newspim] 글 황수정 기자(hsj1211@newspim.com)·사진 이윤청 수습기자(deepblue@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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