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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헤이세이'…일본 연호 어떻게 정할까?

기사등록 : 2018-03-0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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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 선정 요령'에 따라 고안자·후보 리스트 선별
리스트 작성 후에도 손이 많이 가는 작업

[뉴스핌=김은빈 기자] 내년 4월 30일 아키히토(明仁) 덴노(天皇·일왕)가 퇴위하면서, 헤이세이(平成) 시대도 31년으로 막을 내린다. 일본 내에선 새로운 연호 준비가 한창이다. 2019년 5월 1일 나루히토(徳仁) 황태자가 즉위하면 이에 맞는 새 연호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연호는 각종 공문서와 증명서, 화폐, 물품 등 폭넓게 사용된다. 그 만큼 일본 정부는 연호 결정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아키히토(明仁) 일본 덴노 <사진=뉴시스>

◆ 헤이세이 첫날부터 준비한 '포스트 헤이세이'

5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헤이세이 연호가 시작된 1989년 1월 8일부터 '포스트 헤이세이' 연호를 준비해왔다. 

연호 준비 작업의 첫 단계는 연호 후보들을 모으는 것이다. 연호 후보들은 일본 정부가 1979년 정한 '연호 선정 요령'에 따라 작성된다. 요령에 따르면 일본 총리는 ▲높은 식견을 가진 ▲약간 명에게 ▲2~5개의 연호 후보 제출을 요청해 연호 후보를 마련한다. 

헤이세이 연호 준비 실무를 담당했던 마토바 준조(的場順三) 전 내각내정심의실장은 '높은 식견을 지닌 인물'의 기준으로 ▲한문학자나 동양사학자, 혹은 국문학자 ▲일본학사원 회원 ▲문화훈장 수상자 또는 문화공로자 ▲그 밖에 해당 분야에서 저명한 공적을 세운 자를 들었다. 

마토바 전 심의실장은 "그 밖에도 출신 대학 분포를 도쿄대(東京大)뿐만 아니라 교토대(京都大) 등 서일본지역의 대학을 포함시키는 등 고르게 하는데 주의한다"고 말했다. 

총리의 의뢰를 받은 이들은 마찬가지로 연호 선정 요령이 명시한 조건에 따라 연호 후보를 고안해, 연호의 의미와 원전(原典)을 함께 제출한다. 

연호의 조건은 ▲좋은 의미를 지닐 것 ▲한자 2글자 ▲쓰기 쉬운 한자(한자 당 15획 이내) ▲읽기 쉬운 한자 ▲연호로 사용되지 않았어야 함 ▲여태까지 사용되지 않은 단어 등 6개 조건이다. 이들은 1인 당 복수의 연호를 제출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정부 관계자는 "후보 안이 고정된 건 아니고 필요에 따라 더해지거나 바뀌거나 한다"며 "의뢰를 한 학자에게 1년에 1번씩 생각에 변함은 없는지 확인한다"고 전했다. 

연호 제출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사망한 자의 후보 연호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에 따라 후보에서 제외한다. 

현재는 기존의 리스트 외에 별도의 리스트가 하나 더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기존 리스트를 추려 3개 정도로 후보를 압축시켜놓은 리스트다.

신문은 "이전에는 리스트에 후보가 몇개 없으면 외부 유출이 쉬웠기 때문에 일부러 많은 후보안을 남겨뒀었다"면서 "다만 현 덴노가 측근에게 생전 퇴위 의사를 알렸던 2009년(헤이세이 20년)을 기점으로 압축 작업이 가속화됐다"고 전했다. 

1989년 1월 7일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당시 관방장관이 헤이세이(平成)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NHK 화면 캡처>

◆ 사용여부·원전(原典)·이니셜까지…"고려할 게 너무 많아"

자격 요건을 만족시켰다고 연호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연호 업무를 담당했던 관계자들은, 가장 고된 업무가 연호 리스트에 따른 '꾸준한 체크'라고 입을 모은다. 연호의 6개 조건 중 '여태까지 사용되지 않은 단어'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다.

대표적인 사례로 헤이세이의 경우, 신연호로 발표된 뒤 平成라고 쓰고 '헤나리'라고 읽는 지명이 기후(岐阜)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해당 마을은 1991년 '일본 헤이세이무라(平成村)'로 지명을 바꿔 전국 각지로부터 관광객이 모여들고 있다. 

담당자들은 이런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리스트에 적힌 연호 후보들이 지명이나 기업명 등 고유명사로 사용되는 지 확인한다. 

연호의 한자 2글자의 원전도 중시된다. 헤이세이의 원전은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의 '内平外成(안이 다스려져 바깥 일이 이루어진다)'와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의 '地平天成(땅이 다스려져 하늘 일이 이루어진다)'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서경'의 해당 부분이 청나라 고증학자들의 연구로 위서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연호 결정 시 논란이 됐다. 해당 문구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伝)에도 있었기에 당시 저명한 한학자는 "어째서 거기서 인용했냐"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헤이세이 연호를 결정했던 1989년 1월 7일 연호 간담회에서 "메이지(明治), 다이쇼(大正), 쇼와(昭和) 이니셜이 M,T,S라서 이니셜이 겹치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H로 시작하는 헤이세이가 낙점됐다. 당시 헤이세이와 함께 S로 시작하는 슈분(修文), 세이카(正化)가 최종 후보였다.

이처럼 고려할 게 많은데다 '비밀 중의 비밀'로 취급되다 보니 업무 담당자들의 스트레스도 막중하다.과거 실무업무를 담당했던 관계자는 "어디가서 상의를 할 수도 없다보니 심리적인 부담이 상당했다"고 말했다. 

◆ 포스트 헤이세이는?…"첫인상이 확 와닿진 않아"

아베 총리는 새로운 연호에 대해 "많은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져 일본인의 생활에 깊이 뿌리내리는 것이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연호에 대한 일본 국민의 애정도 남다르다. 지난해 7월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 따르면 "앞으로도 연호를 사용하는 편이 좋은가"는 질문에 "계속 사용하길 바란다"는 응답이 75%로 "그렇지 않다"(15%)를 상회했다. 

그렇다면 현재 3개로 압축된 후보들은 어떤 연호들일까. 해당 리스트를 본 적 있는 전 정부 관계자는  "한눈에 딱 느낌이 와닿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의 '헤이세이'도 처음엔 이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뉴스핌Newspim] 김은빈 기자 (kebju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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