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준희 기자] 안희정 충남지사가 지목된 성폭행 폭로를 정점으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서지현 검사의 법조계 성추행 폭로로 촉발된 국내 미투 운동은 문화예술계 유명인사들이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되며 연일 충격을 전하고 있다.
미투의 무풍지대는 없다. 문화예술계를 필두로 학계·종교계·의료계·정계까지 ‘나도 당했다’는 성추문 폭로에 떠들썩하다.
미투 폭로로 교수직을 사퇴한 김석만, 박재동, 최용민, 김태훈(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사진=뉴시스> |
◆전문가들, ‘폐쇄적 구조’가 권력형 갑질 잉태
문화예술계·교육계·의료계·종교계 등에서 벌어지는 성범죄는 전형적인 '권력형 갑질'이었다.
문화예술계에선 고은 시인과 이윤택·윤호진 연출가, 배우 조민기·조재현·최일화 등이 미투 운동 전면에 등장했다. 문단과 업계에서 상당한 인지도와 영향력이 있는 유력자들이다. 이들은 같은 업종에서 미래를 그리는 힘없는 을들에게 성적으로 갑질을 행사했다.
교육계에서도 학생들의 학점과 졸업논문, 취업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교수의 입김이 세다. 개강철 전후로 교수들의 성추행 전력이 드러난 서울예대와 명지전문대의 경우, 교수와의 인맥이 현업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문화예술 관련 학과들의 피해가 크게 부각됐다.
문화예술계뿐 아니라 의료계 등 ‘도제식 교육’을 거쳐야 하는 전문 직종의 사정은 비슷하다.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배우기 위해 스승과 제자 관계가 성립되며 권력 구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의사출신 정일채 변호사는 "의료인을 포함해 도제 방식으로 긴 시간동안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집단은 우열 관계가 있고 상하의 문화가 확실하다"며 "(의료진 간 성범죄는) 오히려 통계에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종교계 관계자에 따르면 종교계 성폭행이 건수에 비해 드러나지 않은 이유도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구조 때문이다. 피해자가 목사나 신부 등에 갖는 존경심과 믿음이 강하고, 공동체 내에서 평화를 깨지 않기 위해 문제를 드러내기 꺼린다는 것이다.
최근 종교계에서는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한 신부가 해외 선교 활동 중 여성 신자를 성폭행하려 했다는 미투 폭로가 나오며 폭풍전야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0~2016 전문직군별 성폭력 범죄’ 검거 인원 5261명 가운데 종교인이 681명으로 가장 많았다.
권력형 성갑질 문제의 가장 큰 원인으로 '조직의 폐쇄성'이 꼽힌다. 소수의 유력자들이 제자와 후배들의 미래를 좌우하는 분위기가 권력자에 대한 복종을 불러와 권력형 성범죄까지 발생했다는 진단이다.
한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가 개인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다보니 자율적인 인간도 폐쇄적인 조직에 들어가면 권력에 눌리게 된 경우가 많다"고 집단 내 미투 사례 배경을 설명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무한 미투 반복케 한 제도·법 손봐야
건국대 연극영화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지영 연극 연출가는 '예술학교 교육 시스템의 폐쇄성'이 문화예술계 문제의 배경이 됐다는 점에 이의가 없다. 다만 성 문제 등으로 구설수에 오른 교수가 해임이나 정직 처분을 받게 하는 법적 근거가 약하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연출가는 "대학이 학칙을 바꾸든지 법적인 부분을 개선하지 않고는 미투 운동 때나 잠깐 면직된 교수들이 다시 교단에 설 것"이라며 "그 때 학생들이 느낄 좌절감이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조민기 씨도 학내 성추문이 불거졌던 지난 10월, 학교 측에서 받은 처분은 정직 3개월에 불과했다. 3개월 후 다시 학교로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 2016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는 388건의 성추행 제보가 있었지만 ‘바른성문화 TF’를 구성하고 교수진이 공동명의로 사과까지 한 후에도 징계를 받은 사람은 없었다.
의료법의 허점을 지적한 전문가도 있었다. 의료법상 살인, 성폭행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아도 의사 면허는 취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성범죄 전과자가 의사 면허를 취득하지 못하도록 막을 근거 조항도 없어 성범죄를 막기 위해선 제도와 법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법 개정은 고소 남발 우려가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강신업 변호사는 성희롱을 예로 들며 "모르는 사람이라면 모욕죄로 고소할 수 있지만 아는 사람일 경우가 문제"라며 "성희롱도 하나의 조항을 만들어 벌금형으로 처벌하는 것도 경우에 따라 필요할 수 있다. 다만 (그동안 기존법이 유지된 건 이유가 있을 텐데) 시류를 타고 법을 만들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뉴스핌 Newspim] 김준희 기자 (zuni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