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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시론] 5년 시차 데자뷰 포스코와 KT CEO 운명

기사등록 : 2018-04-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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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로 정부 지분 없지만 최대주주 국민연금 내세워 주인 행세

CEO 교체 정치논리가 아닌 경영실적이 기준돼야...김기식 사태 반면교사 삼길

 [서울=뉴스핌]이석중 에디터 =

 

< 5년 전인 2008년 11월 6일 남중수 KT 사장은 직원들에게 이메일 형식의 ‘원더메모’를 보냈다. ‘KT 사장 사퇴의 변’이었다. “저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중략)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드려 사실관계의 진위나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5년 후인 2013년 11월 3일 이석채 KT 회장은 직원들에게 회장직에서 물러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회사를 살리는 것이 저의 의무이기에 회사가 마비되는 것을 그대로 지켜볼 수는 없었습니다. (중략) 연봉을 포함한 상상을 초월한 억측으로부터 회사가 자유로워질 수만 있다면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제 급여도, 처분이 지극히 제한되는, 주식으로 지급되는 장기 성과급도 한 치 숨김없이 공개하겠습니다. 저는 전임 사장의 급여 체계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

 

지난 2013년 11월 한 시사 주간지에 실린 기사다. 똑 같은 일이 채 5년이 안된 2018년 4월에 다시 벌어지고 있다.

 

◆ 갑작스럽지만, 예견됐던 권오준 황창규 운명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18일 열린 긴급이사회에서 사퇴의사를 밝혔다. 권 회장은 “(50년 미래를 위해) 사의를 표명했고 후임이 정해질 때까지만 회장을 맡는다”고 말했다. 전임인 정준양 회장도 5년 전인 지난 2013년 10월 임시이사회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권 회장의 임기는 오는 2020년 3월까지로 2년 가까이 남았다.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린 성과로 연임에 성공한 것이다. 얼마전 포스코 창립 50주년 행사에서는 미래 50년을 향한 비전까지 제시했던 그의 사퇴는 일견 갑작스럽지만, 예정된 수순이기도 하다.

김영삼 정부에서 외부인사로 첫 사령탑이 된 김만제 전 회장이 김대중 정부 들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났다. 이후 유상부, 이구택, 정준양 전 회장 등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쫒겨나듯 자리를 물렸다.

권 회장은 지난달 31일 열린 창립 5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포스코 CEO가 교체됐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저희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정도에 입각해서 경영을 해나가겠다”며 회장 직을 물러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랬던 그가 사퇴키로 갑자기 마음을 바꾼 데에는 황창규 KT 회장이 지난 17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점이 작용한 듯 보인다.

KT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중수 전 사장과 이석채 전 회장은 자진 사퇴했으나 사실상 강제 퇴임이었다. 남 전 사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첫해인 2008년 배임수재 혐의로 검찰에 구속 기소된 직후 자진 사퇴했다. 이석채 전 회장은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후 검찰이 KT 본사와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 후 자리를 물러났다.

이 정부 들어 권오준 회장과 황창규 회장에 대해서도 “정권이 바뀌었으면 알아서 물러나야지 자리에 집착하다 험한 꼴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결국 황 회장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권 회장에 대해서는 비선실세인 유모 씨가 계열사 이권과 인사권 등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 권 회장은 자진 사퇴했지만, 검찰 수사를 면할 수 있을 지는 불투명하다.

 

◆ CEO 교체, 정치논리 아닌 경영 실적이 기준 돼야

포스코와 KT는 오래 전에 민영화 돼 민간기업이 됐지만 역대 정권들은 정부 지분이 없으면서도 여전히 공기업 다루듯 한다.

두 회사의 최대 주주는 국민연금이다. 18일 기준으로 포스코는 10.79%, KT는 10.07%가 국민연금 지분이다. 반면 외국인 지분은 포스코가 57.31%, KT는 49.00% 다. 외국인과 소액주주 지분율이 높다 보니 ‘주인없는 기업’으로 인식됐고, 정권은 국민연금을 내세워 주인행세를 하는 것이다.

포스코는 정권 교체기에 나타나는 정치적 외압을 막고 CEO 인사를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 내부장치를 만들었다. 사외이사 7명과 사내이사 5명으로 구성된 이사회를 구성해 CEO 선임권을 부여했고,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된 CEO후보추천위원회가 CEO 후보자를 검증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런 장치들은 정권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새로 들어선 정권들은 국민연금 지분을 지렛대로, 검찰과 국세청을 앞세워 최고경영자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있음을 세상은 다 안다.

이같은 악순환이 이제는 끊어지길 바란다. 후임 최고경영자 선임이 그래서 중요하다. 정치논리가 개입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경우처럼 제대로 검증되지도 않고, 국민의 눈높이에도 맞추지 못한다면 포스코와 KT 최고경영자의 운명은 도돌이표가 될 것이다. 이 정부 최대의 인사문제로 지적됐던 캠코더 인사(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 출신)여서는 더 더욱 곤란하다.

투명한 절차를 거치되 투자자들이 납득할 수 있고,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어야 다음 정부에서 CEO 흑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는 것이다.

다음 정부가 들어서는 2022년 ‘과거 정부에서 임명됐던 최고경영자가 정권이 바뀌면서 교체돼 또 다시 정권의 전리품 취급을 받고 있다’는 기사가 데자뷰로 나타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julyn11@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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