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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의 住食 이야기] ‘다산신도시 택배’ 논란의 본질은

기사등록 : 2018-05-03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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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 '안전성'과 '편의성' 함께 고려하는 시스템 마련돼야"

[서울=뉴스핌] 김정태 유통부동산 담당 에디터 = 2005년의 일로 기억한다. 당시 필자는 결혼 10년 만에 용인의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2004년 입주했다. 단지 규모가 2000가구나 되는 대단지 아파트였다. 첫 내집 마련의 기쁨이 컸는지, 입주 예정자들과 아파트 하자와 공동구매 등 공동 대응해 나가는 인터넷 커뮤니티 카페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한 전력(?)이 결국 입주자대표회의위원회(이하 입대위) 위원으로 선출됐다. 당시 입주민들이 제기한 안건 중 하나가 택배와 유치원 등 외부차량의 단지 내 출입을 금지시켜달라는 요구였다. 택배 차량과 중대형 버스가 단지 내 도로를 수시로 드나들면서 아이들의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여기에 버스가 내뿜는 매연과 소음이 싫다는 이유에서다.

입대위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아파트 단지 정문과 후문에서 멀리 떨어진 동(棟)과 오르막이 심한 뒷 동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이 안건에 대해 반발했다. 이들 차량의 출입을 금지시킨다면 오히려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많은 택배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적치 공간도 부족하고 더욱이 출퇴근에 쫓기는 맞벌이 부부들에겐 어린 아이와 함께 매일 두 차례씩 10여분 걸어서 나와 유치원 버스에 태우고 내리는 일이 고역이라는 것이다.

결국 입대위는 엇갈리는 양 측의 입장을 고려해서 입주민들에게 한 발씩 물러선 양해와 양보를 구했다. 유치원과 어린이 차량은 정해진 시간 외에 단지 내 출입을 금지시키고 규정 속도의 서행을 준수하도록 권고했다. 택배 차량은 단지 내 진입을 허용하되, 지원센터(관리사무소)에 새로 마련한 적치 공간에 택배 물건을 쌓아두고 입주민들이 찾아 가도록 했다.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동주택 생활에서 일부 불편을 감수하는 것은 공익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이 같은 아파트 규약이 어느 정도 정착되면서 두 번 다시 아파트의 문제로 이슈화되지는 않았다.

 

아파트 주거 환경권과 택배 편의는 동전의 양면

13년이 지난 최근 ‘다산신도시 택배’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다. 발단은 역시 노약자의 안전 문제였다. 단지 내 진입한 택배 차량이 후진하다가 어린 아이가 다칠 뻔한 사고에서 비롯됐다. 이 단지는 택배 차량의 단지 내 도로 출입을 금지시키고 지하주차장 출입만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택배 차량의 지하 주차장 진출입에 문제가 생겼다. 지하 주차장 높이는 2.3m인데 일부 택배 업체 탑 차량의 높이가 2.5m이상이어서 진입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택배기사들은 정문에 배송물을 쌓아두고 직접 찾아가라며 대응했고, 이 단지는 공고문을 통해 택배 서비스에 대한 본연의 업무를 강조하며 압박을 가하자 택배 업체들은 배송을 거부하면서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이 단지의 택배차량 출입 금지를 두고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이 단지의 ‘택배차량 통제협조 안내’ 공고문이 네티즌의 공분을 일으킨 것이다. ‘최고의 품격과 가치’란 표현도 그렇고 택배차량에 대한 구체적 대응이 택배기사에 대한 소위 ‘집단 갑질’ 논란으로 번져 갔다.

 이에 정부가 나섰다. 국토교통부가 주민의 안전도 챙기고 어르신의 일자리도 창출한다는 명목 하에 ‘실버택배’를 도입한다는 것이었다. 단지 특정 장소에 모아 놓은 택배 물품을 정부 기관이나 지자체 등이 채용한 어르신들이 손수레를 이용해 배송한다는 방식이다. 이 보도가 나가자 네티즌들은 또 한번 이의를 제기하며 아예 청와대 청원에 나서 청원자 수가 20만 명이 넘을 정도였다. 국민의 세금을 특정 주민의 편의를 위해 쓰여 지는 것은 특혜이자 형평성에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들 단지 주민에 대한 비난은 더욱 거세졌고 국토부는 결국 없던 일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이 단지의 입주민들은 이 같은 사달이 난 원인을 대기업 택배 업체의 횡포로 내세우며 택배차량의 단지 내 진입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사회 문제로 비화된 데는 일단 양보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인식이 부족했다. 어린 아이를 둔 젊은 부모 입장에선 안전한 아파트 단지 즉, 주거권 측면에서 공간의 안전 확보를 주장하는 건 당연한 입주자의 권리일 것이다. 그런 점에선 택배 차량이 단지 내 진출입에선 좀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하지만 택배는 개인의 편의를 위한 서비스다. 배송 받고자 하는 물품을 집 앞까지 배달시키는 것도 입주민들이다. 그럼에도 택배차량 진입을 막고 무거운 짐을 손수 집 앞까지 실어 나르라고 하는 것은 상식적 판단에서 벗어나 있다.

다른 아파트 단지에서도 유사한 갈등이 있었다. 강남의 한 대규모 단지도 택배 차량의 진출입을 금지하고자 했다. 지상에 차 없는 아파트를 표방하고 지하주차장 높이도 탑 차량이 진입할 수 없었다. 택배업체들과의 대화를 통해 소형 차량 배송을 권고하고 탑 차량에 대해선 입주민과 업체가 분담해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배송토록 했다. 이들 입주민들은 단지의 주거권의 안전을 택한 대신에 편의 이용을 수익자 부담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택배 기사들의 하루 처리해야 하는 물동량과 객단가를 파악하고 타 아파트 단지의 선례를 들여다 본 뒤 대화에 나섰다면 갑질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배려와 갑질 사이 컨트롤 할수 있는 구조적 시스템도 마련돼야

이번 사태가 주는 교훈은 입주민과 택배업체만의 갈등이 아니라는 점이다.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필자가 과거 거주했던 아파트 단지의 사례를 언급했듯이, 아파트 단지의 택배와 통학버스 진출입 문제는 특정 단지가 아닌 대한민국 아파트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고민했을 공통적 관심사다. 그런데도 국토부의 대응은 임시방편적 땜질 처방을 내놨다가 되레 지탄을 받는 꼴이 됐다.

정부가 기왕 나서는 거라면 주택법과 탑 차량의 규제 기준을 손봐야 했다.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은 입주민들의 차량을 주차 할 수 있는 공간으로만 한정돼 있는 게 패착이었다. 건설사도 ‘지상에 차 없는 아파트’라고 홍보만 할 게 아니라 주거환경 변화에 맞게 지하주차장의 진출입 높이를 애초 택배차량도 진입할수 있도록 바꿔야 했다. 당장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면 탑 차량의 높이를 아파트 주차장 높이에 맞춰 제한하거나 개조차량을 엄격히 규제했어야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민 중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율은 2015년 기준으로 53%에 달한다. 이 가운데 수도권은 서울 40.5%, 인천 54.5%, 경기도는 56.6%에 달한다. 최근 입주물량을 감안하면 2019년에는 경기도 아파트 거주 비율은 7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에 많은 지역에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고밀도의 공동주택이 들어선 ‘아파트 공화국’이다. 그만큼 이웃과 더불어 사는 배려의 미덕이 더 많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층간소음, 층간흡연 등 단지 내 주거 환경 문제도 이 같은 배경이 깔려 있다. 안전과 쾌적성에 대한 입주민의 요구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정부는 아파트 중심의 주거 환경의 변화에 맞게 이해 당사자의 갈등을 컨트롤할 수 있는 구조적 시스템의 혜안도 필요하다.

dbman7@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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