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독단에 지쳐가는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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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선미 기자 = 독일인들 사이에서 반미 정서가 확산되고 있어 유럽과 미국 간 동맹 관계가 위태로워 질 수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논평했다.

독일인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원래부터 심했고 이란 핵협정 탈퇴를 발표한 후에는 이러한 반감이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독일 정치인들은 반트럼프 정서에 그치고 있는 반면, 독일 유권자들은 반미 정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주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협정 탈퇴는 국제사회의 질서에 대한 신뢰를 저해하는 결정이다. 모든 이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면 세계는 망할 것”이라며 결국 분통을 터뜨렸다.

독일 유력 시사주간지 슈피겔(Der Spiegel)은 ‘굿바이, 유럽!’이라는 제하의 논평에서 유럽이 반트럼프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슈피겔은 논평에서 “과거 우리가 알던 서방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유럽과 미국 간 관계는 현재 우정이라 부를 수 없고 파트너라고도 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70년 간 이어진 신뢰를 저버리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징벌적 관세를 원하고 복종을 강요한다. 이는 더 이상 독일과 유럽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파병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 간 경제, 외교, 안보 정책 협력이 존재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문제에 대한 답은 ‘노’(No)다”라고 역설했다.

이는 꽤 강한 비난이라 볼 수 있다. 물론 메르켈 총리는 미국과의 동맹을 해체하겠다는 신호는 전혀 보내고 있지 않으며 슈피겔지도 “유럽이 트럼프 이후의 미국에 대비하며 그때까지 미국을 도발하지 말아야 한다”고만 조언했다.

독일 정계는 트럼프 대통령이 골칫거리라고 생각하고는 있으나 잠자코 기다리면 골칫거리가 사라질 것이란 유럽 특유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미국에 대한 유럽의 안보 의존도도 현실적인 문제로 작용한다. 메르켈 총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요구하는 대로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로 끌어올리겠다고 재차 약속했지만, 현재 예산안에 따르면 독일 국방비는 올해 GDP의 1.24%에서 2019년에 1.29%으로 오르는 데 그친 후 2022년에는 1.23%로 도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독일 유권자들은 국방비나 안보 의존도에 큰 관심이 없다. 퓨리서치와 독일 쾨어버 재단이 미국과 독일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유럽 관계에 있어 미국인들은 안보와 국방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독일인들은 경제 협력과 민주주의 가치 공유를 우선시했다. 또한 독일인 응답자 과반수는 미국-독일 관계가 ‘나쁘다’고 답한 반면 미국인 응답자는 소수만이 이렇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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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독일 유권자들 간 독일-미국 동맹에 대한 인식 차이 [자료=퓨리서치센터]

독일은 이라크전에 끌려 들어가는 것은 저항했지만 아프가니스탄전에서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대인 학살이라는 과거 청산에 지대한 노력을 펼쳐온 독일인들은 미국의 고문, 불법 구금, 불법 사찰 등 반인륜적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에도 독일인들은 경제 및 무역 관계에 있어 미국과는 가치관의 괴리가 크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조차도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에 대해 유럽 등 다른 지역에서보다 훨씬 강력한 징벌적 조치를 내렸고,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 자동차산업이 무역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난을 지속하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서도 관세 압박을 가하며 무역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또한 존 볼턴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은 이란 제재를 어기는 유럽 기업들에게 제재를 가할 것이라 위협하고 있다.

이 가운데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대가로 미국 기업의 북한 투자를 약속했다. 독일인들이 보기에 미국이 이란과 북한에 대해 모순되는 행동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논평가 마르크 셰리츠는 트위터에서 “한 마디로 미국 기업들은 북한에서 활동할 수 있지만, 유럽 기업들은 이란에서 활동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일갈했다.

셰리츠는 또한 독일 주간지 디차이트(Die Zeit) 기고문에서 미국이 더 이상 유럽의 파트너가 아니며 경쟁자라며, 유럽이 미국의 협박에 맞대응해야 할 때가 왔다고 주장했다.

메르켈 총리를 비롯해 독일 지도자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양보와 타협을 선호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간 반미 정서를 억눌러 왔다.

하지만 미국과의 동맹에서 얻을 것이 많지 않다는 점을 독일인들이 확실히 깨닫게 된다면 이러한 겸손함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할 수 있다. 이렇게 확산된 반미 정서는 포퓰리즘 정당이 사용할 수 있는 유용한 패가 될 수도 있다.

독일은 동서독 통일 이후에도 수십년 간 미국에게 세계 지도자 자리를 양보해 왔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 이후 시대의 독일은 유럽연합(EU)을 무기로 활용해 더욱 공격적인 태세를 취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물러난 후에 미국의 일방주의가 다소 완화된다 하더라도, 수년 간 쌓여온 불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논평을 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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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사진=로이터 뉴스핌]

 

gon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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