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내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예정된 사상 초유의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소위 ‘삼각 채널’ 실무 협상팀이 싱가포르와 뉴욕, 판문점에서 숨가쁘게 추진되고 있지만 비핵화를 둘러싼 양국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다는 것이 주요 외신과 석학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백악관이 최근까지 내달 회담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불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로이터 뉴스핌] |
양국의 고위 관료들이 나선 실무 회담의 결과에 내달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 여부가 달렸다는 것이 외신들의 판단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내부 보고서를 통해 김정은 정권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정도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둘러싼 회의론이 깊다.
이른바 CVID(온전하고, 확인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원하는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모든 핵 프로그램과 우라늄을 포함한 핵분열성 물질의 폐기와 핵 시설 폐쇄를 선언하도록 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하지만 첫 술에 배 부를 수 없다는 것이 석학들의 주장이다. 불과 10여일 사이 비핵화와 평화 협정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면 보다 현실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
실무 회담 가운데 특히 세간의 시선이 집중된 30~31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회동을 앞두고 폭스뉴스와 ABC 등 미국 주요 언론과 전문가들은 다양한 차선책을 제시했다.
가장 유력한 해법으로 등장한 것은 북한의 부분적인 핵 폐기다. 이는 다양한 소식통들이 가능성을 언급한 현실적인 카드다.
풍계리 핵 시설을 폭파시킨 데서 보듯 김 위원장이 실제로 핵 무기의 일부를 포기할 의사가 있다는 얘기다.
이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얻을 수 있고, 김 위원장 입장에서도 핵 포기에 대한 진정성을 서방에 확인시키는 한편 경제 제재 완화와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당근’을 얻기 위해 적절한 방안이라는 의견이다.
또 이는 북한에 일부 핵무기의 해외 반출을 요구한 미국 정부의 입장과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평가다.
핵 프로그램은 북한의 특급 비밀이자 최대 자산이다. 김정은 정권이 핵 무기의 일부를 반출하더라도 미국과 동맹국들은 북한의 핵 개발 단계와 기술력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얻게 되는 셈이다.
다만, 이 경우 온전한 비핵화를 위한 추가적인 협상이 전제돼야 한다. 부분적인 핵 폐기만으로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깨끗하게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핵을 포함한 대량 살상 무기의 동결도 현실적인 해법 가운데 하나로 제시됐다. 북한은 이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 실험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단거리 미사일을 포함한 그 밖에 무기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고, 이는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을 불안하게 했다.
전문가들은 핵과 미사일은 물론이고 고농축 우랴늄과 플루토늄을 포함한 원재료와 생산 설비를 모두 동결시키는 것이 온전한 비핵화에 앞서 트럼프 행정부가 선제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고위 관료와 정보 당국도 북한 핵 시설의 정확한 규모와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실정이다. 때문에 설비 동결은 국제 기구와 김정은 정권의 강력한 공조가 요구되는 일이다.
이 밖에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최고 권위의 전문가로 꼽히는 핵 과학자 지그프리드 헤커와 로버트 카를린은 10년에 걸친 단계적 비핵화 방안을 내놓았다.
첫 1년간 핵 시설을 동결한 뒤 2~5년에 걸쳐 점진적인 폐기 과정을 갖고, 이후 6~10년간 핵 프로그램을 최종적으로 제거하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회동할 예정이고, 러시아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31일 북한을 방문해 의견을 나눌 계획이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