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경민 기자 =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의 여당 소속 한 자치구청장 후보는 당내 경선 과정에서 '그 곳'을 '소돔의 형벌을 받을 곳'이라고 했다. 구청장이 되려는 여당 후보자는 문자메시지와 SNS 등을 통해 '그 곳'을 '악의 진원지'로 지목했다.
소돔은 구약성서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팔레스티나 사해 인근 도시다. 성적 문란과 도덕적 퇴폐 때문에 하느님의 노여움을 샀다. 인근의 고모라 등과 함께 '유황불 심판'으로 멸망했다. '소돔과 고모라'라는 말은 '죄악의 도시' '말세'를 의미하는 뜻으로 사용된다.
사회전반적으로 불어닥친 미투(Me Too) 운동도 '소돔의 형벌을 받을 곳'은 피해가는 듯 했다. 그 곳에는 아직 '여성'들이 둥지를 틀고 숨죽이며 살고 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은 정말 절실한 사람들”이라는 말에 업주들도 “그래 맞아”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미투 운동에서도 소외된 '그 곳'은 ‘미아리 텍사스촌’으로 불리는 집창촌이다.
'미아리 텍사스촌'이라고 불리는 집창촌의 모습. 2018.06.05. kmkim@newspim.com <사진=김경민 기자> |
'성매매방지특별법'(성매매특별법)이 실시되기 전인 2000년대 초반까지 이곳은 350여 개의 업소가 있었다. 호황을 이뤘다. 일대 상인 대표 단체인 88정화위원회의 유태봉 위원장은 “요즘 같이 날씨가 풀리면 오후 8시만 돼도 손님이 꽉 차있었다. 주말엔 손님들끼리 치어서 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88정화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그 땐 간판 불을 다 켜놔 골목이 환했다. 호황기 땐 종업원을 30여 명까지 고용한 곳도 있었다. 한 업소 당 ‘마담(호객 행위 하는 여성)’도 2~3명씩 고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가로등 불만 골목 사이사이를 비추고 있다. 정화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요샌 단속이 심해져 불을 꺼놓기도 하고 실제 빈 집도 많다”면서 “지금은 종업원이 2~3명 정도 있고 1명 있는 곳도 많다. 또 요샌 장사가 안 되다 보니 업주가 마담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기억했다.
5일 밤 12시쯤 찾은 '미아리'에서는 인적이 끊겼다. 1990년대 초반 이곳에 들어온 업주 A씨는 “호황기 땐 하루에도 몇 백만 원씩 수입이 있었다. 지금은 주말조차 손님이 없는 날도 있어 가게 유지를 못 하고 있다”고 했다. 88번지에서 5년여 동안 업소를 운영해온 B씨는 “개시를 못 하는 날이 더 많다. 미아리가 재개발 한다고 하니까 다들 없어진 줄 안다”고 의견을 보탰다.
미아리텍사스는 2004년 제정된 성매매특별법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종암경찰서에 따르면 2018년 2월 기준 87개의 업소가 영업중이다. 일대 업계에선 60여 곳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성기 대비 약 80%가 사라진 셈이다.
한 관계자는 “1차로 성매매특별법 때문에 많이 빠졌고 2차로 10년 전 재개발을 시작했을 때 많이 나갔다. 신종 퇴폐업소가 생긴 것도 한 몫 거들었다”며 “재개발이 되면서 1구역은 현재 3곳만 남았다”고 설명했다.
재개발로 현재 업소 대부분은 월세를 내지 않고 있다. A씨는 “집주인들이 우리가 오고 갈 데가 없으니 집세를 안 받는다. 집세를 안 받아도 하루에 10원도 안 들어올 때가 많다. 빚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 용산과 영등포집창촌은 재개발이 끝난지 오래다. 인근 '청량리588'도 재개발이 속도를 낸다. 하지만 미아리텍사스는 재개발도 기약이 없다.
그들은 미아리를 '종착지'로 표현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유 위원장은 “절실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장애인, 극빈자, 혼자사는 사람들이 주로 온다”고 말했다. C씨는 “내가 이 일을 하지 않더라도 여기는 없어지면 안 될 것 같다. 그 사람들은 고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게다가 솔로들은 훨씬 늘어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길음역 10번 출구에 위치한 이른바 '미아리 텍사스촌' 입구 모습. 2018. 05. 31. kmkim@newspim.com <사진=김경민 기자> |
말 못할 고충도 있다. 다들 외면하는 사이 미아리텍사스는 '인권의 사각지대'가 됐다. 또다른 관계자는 “우린 개 돼지와 똑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위원회 관계자는 “종업원들이 피가 날 정도로 맞아도 치료비도 못 받고 도리어 돈을 주는 경우도 꽤 있다. 모욕은 모욕대로 당하지만 신고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였다고 본다”고 말했다.
업소에서 일하고 있는 한 종업원은 “맞아도 어디다 말도 못 한다. 상식 밖의 행동을 하는 손님들이 매우 많다”며 “휴대전화를 일부로 던져서 파손시킨 뒤 고가의 신형 휴대전화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야말로 엽기”라고 토로했다.
함정단속과 강압수사도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5월18일에는 300여명이 모여 미아리텍사스를 관할하는 서울 종암경찰서 앞에서 함정 단속·강압 수사의 부당함을 규탄하는 시위를 가졌다.
유 위원장은 “단속하는 건 당연히 맞다. 그걸 항의하는 게 아니라 직원인 척 가장해 함정단속을 하고 강압수사를 하는 게 문제라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C씨는 “경찰이 손님으로 가장해서 돈까지 다 내고 종업원과 방까지 들어간다. 목욕탕 문을 열기도 하는데 이건 인격 모독이다”라고 했다.
관계자 또한 “신종 퇴폐업소들은 기업형이고 여긴 생계형”이라며 “불쌍한 사람들이다. 적어도 함정 수사 만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격적으로 존중해 달라”고 말했다.
유 위원장은 형평성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같은 성매매특별법에 적용 받는데 미아리는 보인다는 이유로 함정 수사까지 하고 신종 퇴폐업소는 보이지 않아 어렵다는 이유로 단속을 하지 않고 있다”며 “성매매특별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 위원장은 “성매매특별법은 ‘풍선효과’만 낳았다"며 "집창촌은 사라졌지만 성매매는 은밀히 이어지고 (인권 사각지대인) 이곳은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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