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은빈 기자 = 일본의 주요 대기업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전쟁'을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19일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신문은 일본 주요 100개 대기업 경영책임자(CEO)를 대상으로 5월 28일부터 6월 8일에 걸쳐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는 면담을 원칙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가 세계 경제의 불안 요소라고 답하는 기업이 절반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현재 경기 상황에 대해선 80% 이상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구직자 우위 시장으로 인해 신입사원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기업들도 눈에 띄었다.
◆ "트럼프 대통령 경제정책 우려" 51%로 급증
설문에 응답한 기업들은 현재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84개 기업이 현 경기 상황을 "완만하게 확장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지난해 11월 조사(88개사)에 비해 4개사가 줄어들었다. "답보상태"라는 응답은 전회보다 4개사 늘어난 12개사였다. "확장"은 지난회와 동일한 2개사가 응답했다.
지난달 발표된 2018년 1분기 일본 국내총생산(GDP) 2차 잠정치에서 실질GDP는 전기비 0.2%포인트 감소해 9분기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개인소비 증가가 저조한 탓이었다. 하지만 설문에 답한 경영자들은 일시적인 감속이라는 견해를 나타냈다.
산토리홀딩스 니이나미 다케시(新浪剛史) 사장은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도 왕성하고 국내 투자도 좋아지고 있다"며 "지금은 개인 소비가 저조하긴 해도 늘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답했다.
다만 향후 경제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경제 정책이 가장 큰 이유였다. 향후 세계 경제에서 가장 우려하는 재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트럼프 정부의 경제운영"을 고른 기업은 51개사에 달했다. 지난번 조사때는 27개사에 그쳤다.
미국 정부는 6월 들어 유럽연합(EU)이나 캐나다, 멕시코의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고관세 조치를 발동했다. 중국과도 지적재산권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중 간의 무역마찰이 앞으로 기업 실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냐는 질문에 대해서 "커다란 영향이 있다"는 응답이 1개사, "다소 영향이 있다"고 답한 기업이 16개사였다. "영향이 있을 것 같다"는 응답도 24개사였다.
아사히카세이(旭化成)의 고보리 히데키(小堀秀毅)사장은 "중국은 전자 부품 등의 생산거점"이라며 "미중 무역마찰이 본격화되면 간접적인 영향이 클 것"이라고 경계했다.
미쓰비시(三菱)케미칼홀딩스의 오치 히토시(越智仁) 사장은 "(고관세 대상이 되는) 품목을 보면 당사가 직접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소비심리가 얼어붙는 등의 간접적인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 "설비투자 늘린다" 50%
2018년도 국내 설비투자 규모에 대한 질문에선 전년도 대비 "늘린다"고 답한 기업이 50개사로 절반에 달했다. "약간 늘린다"(15개사)와 합하면 전체 3분의 2 가까이가 설비투자 규모를 늘리겠다고 답했다.
투자의 이유(복수 응답 가능)를 묻자 "실력을 키우기 위해"라고 답한 회사가 40개사, "프로세스의 합리화와 기계·자동화"를 꼽은 기업이 22개사였다.
다니모토 히데오(谷本秀夫) 교세라(京セラ) 사장은 "반도체 제조장치용 부품 시장이 호조라서 현재 공장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차세대 통신규격인 5G나 사물인터넷(IoT) 보급의 영향으로 2020년까지는 수요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 본다"고 투자 확대의 이유를 밝혔다.
다만 투자의욕과 달리 개인소비에 대한 인식에서는 불안한 심리가 엿보였다. 일본 국내 경기 우려 요소(복수 응답 가능)에 대한 질문에선 "개인소비의 정체"를 꼽은 기업이 32개사로 가장 많았다. "원유 등 자원가격의 상승"을 꼽은 곳도 23개사였다.
일본의 채용 박람회 모습. [사진=경제산업성] |
◆ 구직자 우위 시장에 우는 日기업…"신입 채용, 목표에 못미쳐"
일손 부족으로 인한 구직자 우위 시장의 영향은 대기업의 신규 채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5개사가 신규채용에서 계획대로 인원을 확보하지 못하는 등 "(구직자 우위 시장의) 구체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지금은 구체적인 영향이 없지만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앞으로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답한 기업도 29개사에 달했다. 구직자 우위 상황을 우려하는 기업이 40% 이상되는 셈이다. 신문은 "일본을 대표하는 대기업에서도 채용이 쉽지 않은 상황이 드러났다"고 전했다.
이미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15개 기업들은 "면접 과정 중에 그만두겠다고 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식품), "원하는 레벨을 달성한 인재의 채용이 어려워지고 있다"(소매업), "IT 등 니즈가 높은 분야는 계획만큼 인재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화학)고 호소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응답 기업 중 88개사가 채용방식이나 신입사원 처우를 지난해부터 변경했다고 답했다. 인턴십 제도를 도입·확충하거나 회사 설명회를 늘리는 기업들도 두드러졌다.
신입사원 임금을 올린 기업도 25개사였다. 올해 임금을 올린 백화점 다카시마야(高島屋)의 기모토 시게루(木本茂) 사장은 "중도포기자가 증가하면서 내정을 많이 내지 않기로 했던 계획도 달성 못하고 있다"며 "매년 이런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다만 신문은 "숫자 상으로는 대기업이 채용 시장에서 고전을 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다. 취업 정보 업체 리쿠르트 조사에 따르면 2019년 봄 졸업예정인 대학생 대상 구인배율은 종업원 300명 미만의 중소기업에선 9.91배였지만, 5000명 이상 대기업에선 0.37배였다.
이에 쓰네미 요헤이(常見陽平) 지바(千葉)상과대 전임강사는 "기업 측이 원하는 인재 수준을 바꾸지 않고 채용 수만 늘렸기 때문에 일부 학생에게만 내정이 집중된 상황"이라며 "때문에 내정을 받고도 그 회사에 가지 않는 사례가 대기업에서도 나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keb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