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준호 기자 = SK플래닛이 11번가를 품은 지 3년도 채 안돼 다시 분사를 결정했다. 캐시카우인 11번가를 흡수합병해 시너지 창출을 꾀했던 SK플래닛의 시도는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대신 사업부 분사를 통한 경영 효율화를 출구 전략으로 삼았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SK플래닛은 이날 오후 이사회를 열고 11번가의 인적 분할을 결정했다. 신설법인은 오는 9월 1일 출범 예정이다.
◆ 매각 대신 투자유치로 방향 선회
SK그룹은 기존의 ‘분사 후 매각’ 대신 ‘분사 후 투자유치’로 그룹 이커머스 사업에 방향타를 틀었다. 분할된 11번가 신설법인은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사모펀드(PEF) 운용사 H&Q를 대상으로 제3자 배정 방식 유상증자를 진행한다. H&Q는 국민연금, 새마을금고와 함께 11번가 전환상환우선주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5000억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결과적으로 SK플래닛은 지난 2016년 2월 자회사인 11번가 운영업체 커머스플래닛을 흡수 합병했다가 다시 독립시키는 꼴이 됐다.
당시 커머스 사업 역량을 결합해 글로벌 커머스 사업자로 시너지를 꾀한다는 복안이었지만, 온라인 시장의 과도한 출혈 경쟁으로 인해 적자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실제 2015년 58억원 규모였던 SK플래닛의 영업적자는 11번가를 흡수합병한 2016년에 3650억원으로 대폭 늘어났다. 그 중 대부분이 SK플래닛의 중점 사업인 11번가에서 발생한 손실이다.
SK플래닛이 매년 수천억원대의 적자를 지속하면서 모회사인 SK텔레콤의 실적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해왔다. 시장에 11번가 매각설이 수그러들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롯데·신세계 등과 지분매각 협상을 논의했다 결렬된 바 있다.
그러나 SK텔레콤은 온라인시장의 높은 성장성을 감안해 다소 부담을 안고서라도 11번가를 안고 가기로 결정했다. 대신 재무적투자자(FI)로부터 투자를 유치해 사업 효율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분사는 의사결정 체계의 '다이어트'로 풀이된다. 사실 대기업의 수직적인 의사결정 과정은 시장의 변화가 잦은 오픈마켓 사업에 적합하지 않다.
◆ '한국판 아마존' 도약 계기 마련
모회사인 SK텔레콤에서 SK플래닛, 11번가로 이어지는 수직적 구조가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한 이커머스 시장에서 성장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H&Q와 국민연금도 5000억원 투자의 선결조건으로 11번가의 분사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 투자 유치를 계기로 11번가는 ‘한국판 아마존’을 위한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
그간 SK플래닛은 최근 수년간 자금 조달을 위해 투자 유치를 추진해 왔지만 번번히 무산됐다. 2016년 BoA메릴린치 주관으로 최대 1조원 규모의 재무 투자 유치를 추진했지만 결실을 맺지 못했고, 중국민생투자유한공사로부터 타진한 1조300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도 협상이 중단됐다.
그러나 이번에 경영권을 확보한 채로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서 본격적인 성장에 가속을 붙일 전망이다.
별도 법인으로 분리된 11번가는 빠른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고, 수혈된 자금을 인공지능(AI)과 간편결제 서비스, 신선식품 사업 등에 투입할 계획이다.
SK플래닛 관계자는 “향후 온오프라인 구분 없이 치열하게 전개될 경쟁 환경 속에서 11번가가 독립 이후 커머스 중심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수익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확보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11번가 B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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