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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지 않고 바다 가른다'…63빌딩보다 큰 현대상선 포스호

기사등록 : 2018-06-2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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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말레이시아 포트클랑 구간 현대포스호 승선
19시간 꼬박 물살 헤쳐...입출항시 긴장감 '최고조'
"가족에 대한 그리움 커...국가 차원 지원 필요"

[싱가포르‧포트클랑<말레이시아>=뉴스핌] 유수진 기자 = 배는 멈추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이 바다 전체를 뒤덮은 밤에도 쉬지 않고 계속 앞을 향해 나아갔다. 비가 쏟아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약속된 시간에 맞춰 안전하게 화물을 운반하기 위해 묵묵히 제 길을 갔다. 

지난 19일 낮 1시30분(현지시간) 싱가포르항 케펠터미널. 정박 중인 현대상선의 8600TEU(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포스(FORCE)호에선 화물을 하역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대형 갠트리 크레인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한쪽에선 물건을 내리고 다른 한쪽에선 실었다. 이날 새벽 4시30분쯤 싱가포르에 들어온 이 배는 약 9시간 만에 화물 하역과 벙커링(연료주입) 등을 마치고 곧장 말레이시아 포트클랑을 향해 닻을 올렸다.

현대상선 현대포스호가 말레이시아 포트클랑에 정박한 모습. [사진=유수진 기자] 2018.06.20 ussu@newspim.com

"올 스테이션 스탠바이, 올 스테이션 스탠바이!" 출항시간이 다가오자 선박 맨 위층 선교(브릿지)에 있는 운항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행여 방해가 될까봐 말을 붙이기 어려울 정도였다. 출항을 돕기 위해 배에 올라탄 도선사를 비롯, 모든 승무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바삐 움직이며 출항 준비를 서둘렀다. 선원들은 보통 입출항 1시간 전부터 스탠바이를 하는데, 이때가 가장 업무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다. 순간의 실수가 자칫 접촉사고 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기자가 승선한 현대포스호는 길이 339.6m에 너비 45.6m, 높이 62.3m인 8600TEU급 컨테이너선이다. 63빌딩(274m)을 눕혀놓은 것보다 60m 가량 더 길다. 적재 가능한 화물량은 8540TEU로, 컨테이너 전부를 일렬로 붙이면 서울에서 안성까지 갈 수 있는 거리(52㎞)다. 갑판 넓이만 축구장 1.5개 크기에 달한다.

포스호는 현대상선의 북인도 서비스(CIX‧CHINA INDIA EXPRESS)에 투입되고 있다. 항로는 광양-부산-상해(중국)-닝보(중국)-심천(중국)-싱가폴-포트클랑(말레이시아)-나바셰바(인도)-문드라(인도)-카라치(파키스탄)-포트클랑-싱가폴-홍콩이다. 현대상선은 이 서비스를 8600TEU급 6척으로 운영하고 있다. 위클리 서비스를 하는 컨테이너선은 반드시 정해진 요일‧시간에 맞춰 입출항이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CIX 항로 한 바퀴를 도는데 총 42일이 소요된다.

현대포스호에 컨테이너들이 가득 쌓여있다. [사진=유수진 기자] 2018.06.20 ussu@newspim.com

◆ 갑판 위 컨테이너 '빼곡'...비상시 안전장비도 완비

무사히 항을 빠져나오고 나니 승무원들 얼굴에 한결 여유가 생겼다. 이 배에는 총 22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다. 선장과 항해사들은 브릿지에 있는 운항실에서, 기관장과 기관사들은 엔진 제어 설비가 마련돼 있는 기관실에서 근무를 한다. 운항실과 기관실은 모두 반자동화 돼 있어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다. 다만 운항실은 한시도 비워둘 수 없기 때문에 항해사들이 4시간씩 24시간 교대근무를 한다.

갑판 위에 나가보니 수많은 컨테이너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배가 흔들려 화물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고박(라싱) 작업을 완료한 상태였다. 특히 직육면체 모양의 일반 컨테이너 사이에 원통형 컨테이너가 눈에 띄었다. 대부분 액체가 들어있다고 한다. 운항 중 화물 관리는 1등항해사(일항사)가 총괄한다. 정동훈 일항사는 "위험화물(DG)과 냉동화물(RF) 등 특수화물은 하루에 2번씩 체크한다"며 "그냥 싣기만 하면 되는 일반화물과 달리 온도 등을 조절해야 해 신경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포스호에는 구명정(좌측부터)과 구명뗏목, 구명동의 등 비상시를 대비한 안전장비가 잘 준비돼 있었다. [사진=유수진 기자] 2018.06.20 ussu@newspim.com

선박 내에는 비상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장비도 잘 마련돼 있었다. 갑판에 6개의 구명뗏목과 2개의 구명정이 준비돼 있었고, 선실 서랍에는 구명동의가 들어있었다. 비상상황 발생시 선원들은 구명정 두 척에 나눠 타고 탈출을 해야 한다. 기자도 처음 배에 오를 때 비상시 1호정에 탑승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이러한 장비들은 삼항사가 매주 한 번씩 상태를 체크하며 꾸준히 관리하고 있다.

◆ 6개월 근무, 2개월 휴가..."가족에 대한 그리움 커"

선원들은 보통 6개월 연속으로 해상근무를 하고 2~3개월 정도 육지에서 휴가를 보낸다. 따라서 배 안에는 승무원들이 생활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들이 마련돼 있다. 개인 선실은 물론, 체력단련실과 도서실, 흡연실, 세탁실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시설들이다. 입‧출항시나 근무시간이 아닐 땐 이곳에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해상근무 기간에는 크게 제한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일단 항해 중에는 전화와 인터넷 사용이 불가능하다. 또한 하역장비 발달 등으로 포트타임(배가 항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지는 추세여서 정박 중에도 선내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다음 달부터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지만 선원들은 별도의 선원법을 적용받기 때문에 기존과 근무환경이 달라지지 않는다.

말레이시아 포트클랑에 정박 중인 현대포스호. 갠트리 크레인이 화물을 하역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다. [사진=유수진 기자] 2018.06.20 ussu@newspim.com

업무 특성상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다보니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크다. 선원들은 하나같이 가족들을 자주 보지 못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김은수 기관장은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부분이 제일 힘들다"며 "하선 후 휴가 기간에는 가족과 함께 꼭 여행을 간다"고 말했다.

해기사라는 직업에 대해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인식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정 일항사는 "해운업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배 탄다고 얘기하면 보통 어선을 생각한다"며 "실상은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해기사는 해사고, 해양대 등을 통해 국가가 지원, 양성하는 엘리트 해양 인력이다.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연봉이 높고 안정적인 직업이기도 하다.

12~13노트(22~24㎞/h)의 속도로 19시간동안 꼬박 물살을 헤친 포스호는 20일 오전 8시30분(현지시간) 말레이시아 포트클랑 웨스트포트에 도착했다. 전날 출항 때와 마찬가지로 입항 때에도 모든 선원들이 긴장한 채로 분주히 움직였다.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시아로 오는 항로가 유독 좁고 수심이 얕아 홍태환 선장은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운항실을 지켰다.

32년째 배를 타고 있는 홍 선장은 해운인력이 줄고 있는 만큼, 국가적인 차원의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그는 "내가 선택한 길이니 해상근무의 특수성을 받아들이는 게 맞다"면서도 "수출이 기반이 되는 국가인 만큼 해운인력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이 뒷받침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ussu@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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