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규희 기자 =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해 양 전 대법원장 등 핵심 관련자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 주요 물증을 제외하고 일부 자료만 검찰에 넘겨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핵심 증거인 양 전 대법원장 등 컴퓨터 데이터가 영구 삭제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밝힌 수사협조가 ‘허울’ 뿐이 아니냐는 지적이 거세지고 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김명수 대법원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의혹이 확산되고 있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2018.06.05 leehs@newspim.com |
대법원은 지난 26일 “사법행정권 남용의혹과 관련성 있는 410개 주요파일은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비실명화한 극히 일부 파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원본 파일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이는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수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확보한 34만여개 파일 중 ‘상고법원’ 관련 키워드로 추출한 일부 자료이다. 때문에 법원 자체조사 결과만으로 검찰이 수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15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수사가 진행될 경우 미공개 문건을 포함해 특별조사단이 확보한 모든 인적·물적 조사자료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공할 것이며 사법행정 영역에서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며 밝힌 입장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검찰은 대법원 제출 자료만으로는 진상규명이 힘들다며 양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관련자들의 하드디스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무엇보다 객관적 자료를 통해 사실을 확인해야 할 부분이 많고 대법원 판례가 요구하는 증거능력 요건 등을 감안할 때 요청드린 자료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 관계자는 대법원의 ‘원세훈 전원합의체 판결’을 인용하며 “증거능력을 갖추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작성자가 자발적으로 자신이 작성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형사재판 증거로 쓸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5년 7월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핵심 근거였던 ‘425지논’ ‘시큐리티’ 파일을 출처 및 정황 불분명을 이유로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 파일들은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김모씨 이메일 계정에서 발견됐는데, 김씨가 재판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점도 고려됐다.
이후 2016년 5월 형사소송법에는 “진술서 작성자가 그 성립의 진정을 부인하는 경우 디지털포렌식 등 객관적 방법으로 진정성이 증명되는 때에는 증거로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양 전 대법원장 등 의혹 관련자의 자백이 없는 이상, 해당 하드디스크에 대한 수사기관의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서만 증거능력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검찰 /김학선 기자 yooksa@ |
검찰 관계자는 또 ‘최순실 태블릿PC’도 인용하며 원본 하드디스크 확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국정농단 사건에서) 태블릿PC 실물이 있었음에도 증거능력 부여 받는 과정이 굉장히 복잡했다”며 “만약 출력물만 있었다면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았을 거다. 원본에 대한 로그값 등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핵심 연루자 하드디스크 등 추가적으로 핵심자료 확보에 나설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후에 수사 목표에 따라 강제수사든 임의제출이든 방식을 정할 것”이라며 “대법원도 오늘 제출한 자료 외에 제출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어 하드디스크 등 주요 증거 확보를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행정처장의 컴퓨터 데이터가 강력한 자기장을 이용해 복구 불가능토록 삭제하는 ‘디가우징’으로 영구삭제됐다는 점에 대해 대법원은 “관련 규정에 따라 퇴임 후 통상적인 업무 절차에 따라 디가우징 처리 후 보관하고 있다"고 검찰 측에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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