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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대서양 동맹...트럼프의 나토 때리기, 부당하지만은 않다

기사등록 : 2018-07-04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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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선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에 대한 비난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버락 오바마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주장을 펼친 바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화법이 좀더 거칠고 비외교적이며 지극히 트럼프답기 때문에 화제가 되고 있을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 때부터 아시아와 유럽 동맹에게 미국이 베풀고 있는 안보 우산에 민감한 태도를 보였으며, 이들 동맹과의 관계를 지정학적 측면이라기보다 거래 관계로 보고 있다.

그는 2016년 5월 CNN 타운홀 이벤트에서 “나토 때문에 미국이 너무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솔직히 동맹들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난해 험악한 분위기로 점철된 나토 정상회의에서 트럼프는 유럽이 미국 납세자들에게 공정하지 못하다고 비난했고, 지난달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서는 나토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보다도 나쁘다고 말했다.

내주 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이처럼 거친 언사가 부작용을 일으켜 대서양 동맹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지고 있다.

트럼프가 나토를 이처럼 싫어하는 이유는 그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사회를 결합한 집합적이고 다자적인 협력이라는 개념에 대해 근본적인 적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파리기후협약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하고 세계무역기구(WTO) 탈퇴까지 위협하면서 이러한 혐오감을 일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미국의 동맹들이 미국의 돼지저금통을 털어가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성적인 근거를 들지 않고 ‘미국 우선주의’만을 내세우며 비난으로 일관하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 등 유럽 지도자들이 미국의 요구에 맞춰 국방비를 증액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국민들을 설득하기가 어려워진다. 또한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에 파병하는 것도 여론의 반대에 부딪칠 수 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특별한 관계는 러시아를 위협으로 여기는 유럽에게 큰 안보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트럼프가 국방비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 동맹은 지켜주지 않겠다고 공언해 나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집단방위가 무너져 결국 러시아만 좋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 오바마와 부시도 나토 비난했다

나토 동맹국들이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로 증액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데 대해 미국 정부는 이미 인내심이 바닥난 상태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4년 브뤼셀에서 “우리는 집단방위 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는 모든 관련국이 방위비를 분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국방비를 감축하는 나토 동맹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자유가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강력한 나토군과 효과적인 억지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산과 인력을 투입하고 훈련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보다 6년 전 부시 전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에서 “나토와 유럽연합(EU) 군사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나토 회원국들이 국방비를 늘려야 한다”며 “유럽 각국이 자국의 방위에 투자한다면, 나토 동맹이 힘을 합쳤을 때 방위력이 더욱 강력해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세계대전과 냉전의 기억이 희미해져가는 만큼 트럼프가 아니더라도 미국이 나토 동맹국들의 진정성에 의심을 품고 나토를 유지하기 위한 손익 계산을 시작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수년 간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고 있었다. 2017년 나토 데이터를 살펴보면, 유럽 동맹과 캐나다의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이 4.3%포인트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압력과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이 계기가 돼 대부분 나토 회원국이 국방비를 증강하는 추세다.

하지만 미국은 단지 숫자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토군의 능력 자체에 대해서도 우려가 깊다. 유럽이 경기침체와 긴축재정을 거치면서 방위 능력이 쇠퇴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나토를 홀대한다는 주장에도 무작정 손을 들어줄 수 없다. 오바마 행정부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유럽 동맹을 안심시키기 위해 2017년 유럽억지이니셔티브(EDI. European Deterrence Initiative)에 34억달러(약 3조7995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깃발 [사진=로이터 뉴스핌]

◆ 독일이야말로 국방비 증액해야

독일은 2025년까지 국방비를 고작 GDP의 1.5%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군국주의 과거에 대한 기억 때문에 독일에서 국방비는 수십년 간 매우 민감한 정치적 사안으로 자리잡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보낸 서한에서 국방비 증액을 가로막는 정치적 장애물을 이해한다며, “독일을 포함해 경제적으로 부유한 한편 안보 위협이 아주 많은 유럽 방위에 미국은 계속 헌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유럽이 비용을 더 지불하지 않는다면 미국이 이러한 헌신을 중단할 것이라는 사실상의 위협이다.

트럼프는 서한에서 “미국 군인들이 외국에서 목숨을 희생하고 부상당하고 있는데 다른 동맹들이 나토의 집단방위 부담을 공유하지 않으면 미국 국민들을 설득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이 같은 발언은 나토 동맹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침략당한 국가를 지원해야 한다고 규정한 ‘나토 5조’(Article 5) 집단안보의 원칙은 딱 한 번 2001년 9/11 테러 이후 발동됐기 때문이다. 이후 영국과 캐나다는 아프가니스탄과 미국과 함께 싸우느라 출혈이 심했다. 독일은 아프간 전쟁에서 54명의 군인을 잃었으며 여전히 아프간에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파병한 나라다.

트럼프는 동맹들이 비용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 데 분노하고 있지만, 유럽 동맹과 미국 내 나토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나토의 근간이 되는 공동의 가치를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번 주 제임스 멜빌 주니어 에스토니아 주재 미 대사가 “동맹 욕하는 트럼프 밑에서 일 못하겠다”며 사임하면서 이러한 균열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내주 나토 정상회의가 나토의 존폐를 가를 만큼 중대한 자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gon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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