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경민 기자 = 40대 남성 A씨는 2016년 겪었던 성폭력 경험을 어렵게 털어 놓았다. 그는 “OJT(기업 내 종업원 교육 훈련)을 함께 받던 직원들 가운데 10여 살 많던 분이 있었다”며 “워낙 나이 차이가 많이 나 ‘형님’ ‘동생’을 하기로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회사에 쉬는 공간이 있었어요. 공간이 협소해 의자가 부족했습니다. 형님은 앉아 있고 저는 환복을 하고 있었는데 저보고 ‘앉으라’고 몇 번 하더군요. 거절 하니 저를 당겨서 자기 무릎 위에 앉히곤 성기를 몇 번 주물럭거렸습니다. 보는 직원들 눈도 있고…그 때 화를 참 많이 냈습니다.”
A씨는 곧바로 회사에 이를 알렸다. 가해 남성은 경위서를 쓰고 회사에서 퇴사 조치 됐다. 아울러 A씨는 경찰에 가해 남성을 성추행으로 고소했다. A씨는 “내가 당시에 마흔이 다 됐고 더구나 요즘 같은 세상에 있을 수나 있는 일이냐”면서 “특히 나한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끄러워도 경찰에 이를 알린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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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제공한 해바라기센터 남성 성폭력 피해자 이용 현황에 따르면 남성 성폭력 피해자는 △2015년 1019명 △2016년 1057명 △2017년 1117명으로 집계됐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남성 성폭력 피해 사례에서 82.8%가 남성 가해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 가해자는 10.2%, 성별을 알 수 없는 경우는 6.9%를 차지했다.
류혜진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대외홍보팀장은 “가해자의 경우 이성애자가 훨씬 많다”며 “남성 간 성폭력이 성관계가 아니라 권력 관계 확인을 위해 행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아동 피해나 상명 하복 문화가 강한 군대, 감옥 등에서 피해가 다수 발생한다.
결국 남성 간 성폭력 발생 원인도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류 팀장은 “남성 가해자는 권력적 관계를 성적으로 굴복시키는 걸로 우위를 점하려고 한다”며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만 권력 관계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남성과 남성 사이에서도 권력 관계는 존재한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최정선 인천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여성이 피해자인 상황이 훨씬 더 익숙하고 자연스럽다”며 “마치 돈 많은 남자와 가난한 여자가 흔한 드라마 토픽인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남성 성폭력 피해자는 이중적으로 고통 받는다”며 “남성 성폭력 피해는 단순하게 당했다는 데 끝나는 게 아니라 남성성을 건드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남성 성폭력 피해는 범죄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당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당한 것’이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어 여성 피해자와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는 얘기다.
류 팀장도 “우리 사회는 남성이 남성답지 않은 것에 대해 굉장히 엄격한데다 동성 간 성관계 혐오(호모포비아)가 함께 작동한다”며 “이 같은 사회에서 남성들이 자신들의 피해 경험을 담아낼 수 있는 언어가 없다”고 했다. 이어 “즉 남성 피해자는 남성성에 대한 손상과 동시에 동성애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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