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기락 기자 = 부하 직원 상대로 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1심 무죄 판결에 검찰이 항소에 나서면서, 대법원의 업무상 위력 추행 관련 판례가 안 전 지사 항소심에 어떻게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검은 지난 14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의 피감독자 간음·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의 1심 무죄 판결에 항소하기로 했다.
검찰 측은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일관되게 진술했고, 피고인의 요구에 거부 의사를 표시하였을 뿐 아니라 피해 사실을 여러 사람에게 호소하는 등 여러 인적·물적 증거에 의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됨에도, 법원은 달리 판단했다”면서 “항소심에서 충실히 공소사실을 입증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재판부는 상급자인 안 전 지사가 비서인 김지은씨 임명권자이므로 위력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면서도, 위력 행사와 간음 사이에 인과관계, 또 이로 인한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결과가 발생했는지 등은 증거로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대권주자·도지사라는 지위가 비서인 김씨에게는 위력에 해당한다”며 “다만, 이를 통해 김씨의 자유의사를 억압했다고 볼만한 증거는 없다”고 판시했다. 위력에 대해 존재를 인정했으나 행사했다고 보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 안희정-김지은, 위력 보다 ‘관계’가 판결 가른 듯
하지만, ‘위력=행사’ 판결도 있다. 1998년 대법원(97도2506 판결)은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에 대해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말하고,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묻지 않으므로 폭행·협박 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며, 위력 행위 자체가 추행행위라고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된다”고 판결했다.
안희정 도지사는 2017년 당시 자신의 SNS에 아내 민주원 여사에게 화이트데이 사탕을 선물한 사진을 찍어 공개했다. <사진=안희정 SNS> |
당시 재판부는 유치원 원장인 피고인이 교사 채용 과정에서 피해자를 자기 차량에 태우고 가다가 은밀한 장소에 이르러 강제로 키스를 하든가, 유치원 내 다른 사람이 없는 틈을 이용해 피해자의 허리를 양손으로 잡아 올리는 등 행위에 대해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죄로 봤다.
그러면서 “이 경우에 있어서 위력은 현실적으로 피해자의 자유의사가 제압될 것임을 요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라며 “추행이라 함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 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라고 했다. 위력 존재 자체가 행사될 수 있는 권한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다만, 추행 행위 해당 여부에 대해선 “피해자의 의사, 성별, 연령, 행위자와 피해자의 이전부터의 관계,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구체적 행위태양, 주위의 객관적 상황과 그 시대의 성적 도덕관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히 검토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안 전 지사가 무죄 판결을 받은 것도 이 같은 맥락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안 전 지사와 김지은씨의 관계 등이 위력 보다 상위 개념에 있어 판결을 가른 것으로 읽힌다. 재판부가 위력 보다 ‘남녀’관계를 크게 받아들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 대법, 즉흥적·순간적 상황서 ‘위력’ 인정
또 2005년 대법원(2003도7107 판결)은 병원 응급실에서 당직 근무를 하던 의사가 가벼운 교통사고로 인해 비교적 경미한 상처를 입고 입원한 여성 환자들의 바지와 속옷을 내리고 특정 부위를 진료 행위로 가장, 수회 누른 행위에 대해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으로 봤다.
당시 재판부는 “가벼운 교통사고로 인해 비교적 경미한 상처를 입고 입원한 피해자들을 새벽 2시에 깨워가면서까지 진료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데다, 간호사도 대동하지 아니하고 진료차트도 소지하지 않았던 점, 피고인이 피해자들을 만진 근처는 피해자들이 부상 당한 부위와 무관하다”고 했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는 피해자들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고 일반인의 입장에서도 추행행위라고 평가할 만한 것”이라며 피고인의 업무상 위력 등 추행에 대한 상고를 기각했다.
즉흥적이고, 순간적인 상황에서 위력을 인정하고 있는 반면, 남녀 관계가 지속됐다면 그렇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위력에 의한 추행이 벌어졌다면 당시 상황과 피의자와 피해자 간의 사전 관계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피해자가 피의자와 오랫동안 알고 있었고, 추행 등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단순히 피의자가 오라고 해서 갔다든지 등 이유로는 위력에 의한 추행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안 전 지사의 무죄 선고에 아들 정균 씨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상쾌”라는 문구와 함께 “사람은 잘못한 만큼만 벌을 받아야 한다. 거짓 위에 서서 누굴 설득할 수 있을까”라는 글을 남겨 논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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