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 곳곳에는 공사가 중단된 건축물이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도시 외관을 해치고 있다.
수입 에너지 가격이 폭등한 데 따라 발전소는 가동을 멈췄고, 일촉즉발의 부채 위기 속에 은행권은 기업과 가계에 제공했던 신용을 대폭 조이고 있다.
터키 리라[사진=로이터 뉴스핌] |
암환자를 포함해 중증 환자와 약사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의약품 도매상들이 환자의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약물의 공급을 축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수입 약제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기 때문이다.
리라화 폭락으로 인한 참상이 터키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과거 수년간 터키 기업들은 지정학적 리스크와 정치적 혼란에 크고 작은 난관을 맞았지만 최근 상황은 말 그대로 벼랑 끝 위기라는 주장이다.
가까스로 반등했던 리라화가 이날 다시 내림세로 돌아서면서 침체에 대한 불안감이 더욱 높아졌다. 널뛰기를 연출하는 리라화의 변동성과 두 자릿수를 훌쩍 넘은 인플레이션, 여기에 팍팍해진 금융시장 여건까지 민초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미국 금융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값싼 유동성은 터키 실물경제에 윤활유를 제공했다. 정치권 리스크 속에 든든한 버팀목이 됐던 ‘돈줄’이 묶이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석학들은 아직 최악의 상황을 지나지 않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이스탄불 소재 코크 대학의 셀바 데미랄프 교수는 NYT와 인터뷰에서 “경기 침체가 불가피하다”며 “지금 주시해야 할 것은 침체의 규모와 깊이”라고 전했다.
터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17.75%까지 인상했지만 리라화 방어에 실패했다. 전문가들은 보다 극단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준금리를 30% 내외까지 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발목을 붙잡은 것은 정부다. 제레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의 제재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인상 카드를 동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고, 지금까지 중앙은행의 손발을 묶어 두고 있다.
정부의 안이한 대처는 투자자들의 신뢰를 깎아내리는 한편 실물경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일으키고 있다.
의류부터 장신구까지 크고 작은 소매 업체들이 영업했던 매장은 텅 비었고,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리라화가 올들어 반토막에 가까운 폭락을 보이자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달러화로 요구했기 때문.
가뜩이나 불경기에 매출이 급감하는 상황에 달러화로 임대료를 감당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 소매상들의 얘기다. 끊이지 않는 테러 위협으로 인해 리라화 폭락에도 관광객 특수는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수입 관세를 50%로 인상한 데 따라 터키 철강 업계는 개점휴업 상태다.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주요 수출 시장이었던 중동의 수요 역시 크게 위축,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금융시스템을 주시하고 있다. 은행권 부실 채권이 말썽을 일으킬 경우 말 그대로 최악의 사태가 전개될 것이라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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