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
주요뉴스 오피니언

[ANDA 칼럼] ‘국가연구비=국민세금’ 카드 문구에? 코미디인지..

기사등록 : 2018-08-22 07:00

※ 뉴스 공유하기

URL 복사완료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연구윤리, 도마위에 올라...과학기술계 자정 노력 시급

[서울=뉴스핌] 김영섭 기자 = “교수와 연구원들이 연구과제 수행시 사용하는 연구비 카드에 ‘연구비는 국민세금입니다’란 문구를 새겨 넣겠습니다.” 

지난 7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회의실. 국가 연구개발(R&D) 사업 예산의 상당 부분을 집행하는 한국연구재단의 노정혜 이사장은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역할과 책임(R&R)’ 정립 업무 협약식에서 이런 내용을 보고했다. 

노 이사장의 이른바 ‘연구비=국민세금’ 카드 문구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연구비를 사용하는 데 있어 대학교수 등 국가과제 참여 연구원이 ‘부정 사용’하지 않겠다는 경각심을 새롭게 다지겠다는 각오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보면, 그러면 여태껏 수많은 교수와 연구원들이 국가과제 연구비를 사용하면서 이 돈이 국민세금으로부터 오는 것을 ‘진정 몰랐다’는 것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더욱 이상한 것은 ‘어떻게 하다’ 이렇게 다 아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연구비 카드에까지 새겨 넣게 된 건지, 전후 사정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과학기술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연구윤리 해이’ 상황을 보면 금방 이해가 되는 것도 또 웃지못할 작금의 상황이다. 

일부 연구자의 연구비 부적절 집행부터 시작해 미성년 자녀의 부당한 공저자 포함 등 연구윤리를 훼손하는 일들이 잇따라 발생했다. 특히 서은경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이 교수 재직 시절 연구비 유용 의혹을 받고 결국 사임 의사를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서 이사장 스스로도 밝혔듯이 과학창의재단은 과학기술문화와 과학창의인재육성 사업을 담당하는 막중한 책임을 가진 기관 아닌가. 이런 기관의 최고 수장이 어떤 이유에서건 연구윤리 논란에 휩싸인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일부 연구자의 사이비 국제학술지 논문 게재, 유령 학술단체의 국제학회 참가 등 새로운 유형의 부적절 행위가 알려져 충격을 더했다. 지난달 가짜학술단체 논란을 일으킨 ‘와셋(WASET·세계과학공학기술학회)’에 관여한 국내 연구자가 75명인 것으로 1차 조사됐다. 또 다른 허위 학술단체인 '오믹스(Omics)'에 참여한 사례를 포함하면 모두 380여건이라는 조사결과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 대한 과기정통부의 감사를 둘러싸고 DGIST 교수협의회가 감사중단을 요구하는 공식 성명을 이례적으로 발표한 상황도 예사롭지 않다. 교수협의회는 감사사유가 한달 넘게 감사할 중한 사안이 아니며 부당감사로 규정한다. 하지만 DGIST 감사기간은 계속되는 ‘비리고발 투서’ 때문이라는 것이 과기정통부의 설명이다. 민원접수장으로 본 DGIST 혐의를 보면 정말 말 그대로 백화점식 나열이 따로 없다. 연구비 부당집행 의혹부터 시작해 정규직 전환과정 특혜, 펠로(Fellow) 임용 과정의 문제점, 연구과제 편법수행, 부패비위 무마시도 등등. 

이런 일련의 사태에 과학기술계는 비상이 걸렸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회장 김명자)를 비롯해 한국과학기술한림원(원장 이명철), 한국공학한림원(원장 권오경), 대한민국의학한림원(회장 정남식) 등 과학기술계가 총출동해 긴급 기자간담회를 갖고 연구윤리 재정립을 위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과학기술계 ‘대표 인사들’은 한 목소리로 연구윤리를 훼손하는 일들에 대한 경각심을 인지하고 이를 원천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과 대책마련에 나서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도마위에 오른 대한민국 과학의 연구윤리는 이른바 ‘코리아 R&D 패러독스’ 현상의 또 다른 측면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율이 세계 1, 2위를 다투고 국가 R&D의 성공률은 98%에 달하지만, 정작 연구 성과가 혁신 동력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비판이 R&D 패러독스이다. 가장 기본적인 연구윤리가 바닥에 떨어진 마당에, ‘R&D 패러독스’를 깨뜨릴 연구개발 혁신은 ‘딴 나라 이야기’가 될 것임은 너무나 자명하다. 

과학기술계가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 할 때 과학기술인들의 위상은 물론이고 노벨상 배출 등 대한민국의 품격을 한껏 높일 것이다. 이번 일이 과학기술계의 진정성 있는 내부 반성과 함께 새롭게 나아가는 계기로 승화하길 ‘진정으로’ 바란다. 

kimys@newspim.com

<저작권자© 글로벌리더의 지름길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Newspim),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