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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영섭 기자 = 노벨상 시즌을 앞둔 가운데 한국 과학계의 ‘노벨상 0’는 단골메뉴다. 하지만 노벨과학상이 반드시 1등에게 주는 상이 아니라며 정치사회학적 분석을 통한 '노벨상 수상의 공평성 문제’를 본격 제기한 한국연구재단(NRF) 보고서가 나와 주목된다.
12일 ‘과학사로 바라 본 노벨 과학상’이란 제목의 연구재단 발행 정책연구보고서는 ‘노벨상의 공평성’을 도마 위에 올리며 노벨과학상 선정 맥락의 정치사회학적 분석을 통해 노벨과학상 수상의 의미를 조망했다.
보고서는 “노벨과학상 수상에 대한 국내의 관심과 노력이 커지는 것과 동시에, 한국인 노벨과학상 수상에 집중하는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비판도 국내외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한국의 ‘노벨과학상 콤플렉스’를 지적했다.
이어 보고서는 해외 석학으로부터도 ‘한국의 노벨상 노이로제’ 지적이 나올 정도로 노벨상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모습이 오히려 국내 과학계의 품위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보고서는 “한국의 노벨과학상 콤플렉스는 한국 과학기술 수준에 대한 한국 사회 내부의 자신감의 부재가 드러나 있으며 노벨과학상이라는 외부적 인정을 통해 그것을 확인받고자 하는 사회적 욕구가 반영돼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보고서는 “노벨과학상은 좋은 연구에 주어지는 많은 보상과 인정 중 하나인데, 그것 자체를 정부 과학기술 정책의 목표로 설정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실제로 과학사의 사례들을 중심으로 노벨과학상의 연구방식, 수상 국가와 기관, 젠더 등에서 나타나는 수상 트렌드와 노벨과학상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 노벨과학상에 경향성이 있고 ‘공평성 문제’가 자연스럽게 도출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선, 노벨과학상 수상자 연구주제의 경우 실험 연구에 편중된다는 것이다. 실험 연구가 이론 연구보다 '3대(對)1'의 비중으로 월등히 수상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연구 선호 경향은 노벨과학상 운영 초기 물리학 분야에서 분명했다. 1901년의 뢴트겐을 필두로 1909년까지 13인의 수상자 중 이론 물리학자는 헨드릭 로런츠 한 명에 불과했다.
노벨물리학상 초기 운영시절, 실험연구 선호는 웁살라 대학 물리학자들을 대표하는 클라스 하셀베르그의 철학이 강력히 반영된 결과였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초기 노벨물리학상이 실험 분야를 선호했던 또다른 이유로, 이미지 중심의 이른바 '골든 이벤트(golden event)'중심의 실험이 갖는 대중적 인지도를 들 수 있다. 이에 따라 이론 물리학자들은 1920-1930년대에 들어서야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또한 그 동안 노벨과학상 수상 국가를 보면 미국, 영국, 독일 3개국에 집중돼 왔다는 것이다. 2015년까지 3개국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는 전체의 70%를 차지하는 등 국가 편중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노벨과학상 선정 과정이 공평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암시한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아울러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발표한 논문은 흔히 4대 메이저 저널(Nature, Cell, Science, PNAS)에 게재한 비율이 높은 것으로 밝혀져 저널과의 상관관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재미 있는 점은 요즘 흔히 언급하는 양극화 현상이 노벨과학상에도 비슷하게 목격된다는 것이다. 이는 과학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지적한 과학계의 마태효과(Matthew Effect)로 설명될 수 있다. 명성과 보상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일컫는 말로, 한두 차례의 수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과학자, 저널, 국가는 더 많은 주목을 받고 더 많이 인용돼 더 많은 명성과 보상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노벨과학상의 '성 편중'도 심각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1901년부터 현재까지 여성의 노벨과학상 수상은 18회에 불과하며 전체 수상자의 3%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벨위원회는 과거 수상자 선정 과정에서 여성 과학자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하지만 보고서는 노벨상의 이런 경향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은 최근들어 높아지고 있다고 긍정 평가했다.
보고서는 "최근 몇년간 정부와 과학계에서 노벨위원회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어왔던 점이나 최근 한반도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급증하는 상황에 비춰볼 때 한국 과학계가 노벨과학상의 선순환 고리에 진입할 시간이 멀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kimy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