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세혁 기자 = ‘불금’이던 지난 14일 서울 종로3가 사거리. 직장동료와 술자리를 마친 회사원 A(41·남)씨는 자정무렵 집으로 향하다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취객이 택시를 잡으려고 도로 한복판에 서있었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니 취객과 거리를 두고 몇 사람 더 택시를 잡고 있었다. 이들은 1m도 안 되는 좁다란 자전거전용차로 위에서 줄타기하듯 위태하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 옆으로는 버스며 승용차가 속도를 내면서 달렸다. 한눈에도 위험해 보였다.
택시를 잡기 힘든 종로3가 사거리. 지난 15일 자정무렵 한 시민이 자전거전용도로까지 나가 택시를 잡으려 하고 있다. 2018.09.14. [사진=김세혁 기자] |
황당한 일이 벌어진 원인은 다름 아닌 자전거전용차로다. 보통 택시를 잡으려면 인도에서 손을 흔들어야 하는데, 자전거전용차로가 인도와 크게 간격(사진 참조)을 만들어서인지 택시들은 대부분 그냥 지나쳤다.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려는 시민들 입장에선 도로까지 걸어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A씨는 “정신이 멀쩡한 사람도 위험해 보이는데, 취객은 큰 사고가 날 것처럼 아슬아슬했다”며 “‘한밤중 종로에선 흔한 광경’이란 동료 말에 할 말이 없었다”고 혀를 찼다.
서울의 한복판에서 A씨가 목격한 장면은 지난 4월 종로 자전거전용차로가 생긴 이래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친환경 이동수단인 자전거 이용을 장려한다며 서울시가 조성한 자전거전용차로가 보행자 안전을 위협하는 셈이다.
지난 4월 종로1~6가 약 2.6km 구간에 조성된 폭 1~1.5m의 자전거전용차로는 자전거가 통행할 수 있는 길이다. 보통 인도 쪽으로 붙어있는데, 종로3가 사거리처럼 일부 구간은 인도와 약 5m가량 떨어져있다. 택시를 잡기 위해 사람들이 도로로 걸어나가는 상황은 보통 이런 구간에서 벌어진다.
종로3가 사거리에서 자영업을 하는 B씨(61)는 “한밤중에 비틀비틀 자전거전용차로 위에서 택시를 잡는 취객이 적지 않다”며 “보는 사람도 식은땀이 날 지경”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C씨(22)는 실제 사고를 겪을 뻔했다. 그는 “가뜩이나 종로는 택시 잡기 힘든 곳인데, 종로3가처럼 자전거전용차로가 인도와 떨어진 곳은 택시가 쌩하니 가버린다”며 “무리해서 잡으려다 뒤에서 달려온 오토바이에 칠 뻔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자전거전용차로는 오토바이나 택시의 무차별 끼어들기, 화물차 무단주차 등 갖은 불법행위가 벌어지고 있다. 서울시가 단속반을 꾸렸지만 깊은 밤에는 안전사고 가능성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게 시민들 이야기다.
A씨는 “만약 취객이 넘어졌다면 지나가던 차에 크게 다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그야말로 택시 타려면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 하루 빨리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보행친화기획관 교통지도과 관계자는 “해당 구간의 인도와 자전거전용차로 사이의 도로는 택시나 버스가 승객 승하차 목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자전거전용차로 설치가 완료된 지난 4월부터 계도기간이던 6월 말 사이에도 택시가 해당 구간에 들어오지 않고 지나치는 상황이 일부 확인됐다”며 “택시회사들에 관련 공문을 보내 해당 내용을 다시 안내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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