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사진은 문명처럼 전세계적이고 전지구적인 것, 세계 어디서든 사진 작가는 현실을 기록하고 있다."
'문명'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소개하는 전시 '문명: 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문명)전을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개최한 로잔 엘리제 사진미술관장 윌리엄 A. 유잉은 이같이 말했다. 그는 문명은 누적되는 것이며 매 세대가 이전 세대의 성취에 또 하나의 성취를 쌓는 작업이라고 정의했다.
[과천=뉴스핌] 이현경 기자=윌리엄이 에드워드 버틴스키의 '회저살수'를 설명하고 있다. 2018.10.17 89hklee@newspim.com |
그는 같은 맥락에서 사진 역시 집합적인 작업이라며 문명과의 연관성을 설명했다. 윌리엄은 "사진 작가가 오늘날을 해석하는 건 쉽다. 그렇지만 혼자 작업하지 않는다. 카메라·렌즈 제조업체, 소프트웨어 전문가, 그리고 사진을 옮기기 위해선 택시 운전사와 드론 운전자, 편집자 등 다양한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 사진이 탄생한다"고 말했다.
'누적성'과 관련해서는 사진 작가 역시 이전 시대의 사진 작가의 역사를 잘 알고 있어야 '문명'의 축적성을 띌 수 있다고 첨언했다. '문명'전 역시 이전 작가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자 작품을 만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릴 포체, '무제', ‘군중’ 연작, 2014 © Cyril Porchet |
이번 '문명'전에서 사진 작가는 우리가 사는 도시를 '벌집'으로 비유했다. 우리가 발전시키고 확장해 가는 도시 유기체는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수동적인 벌집을 넘어서 배우고 생산하고 사고하는 능동적인 벌집이라고 바라봤다.
작가 시릴 포체는 작품 '무제'로 도시를 표현했다. 화사한 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곤충 떼처럼 모여든 이 모습은 마치 굽이치는 파도처럼 느껴진다. 이들이 어떤 행사를 위해 모였는지 나타내고 있지 않지만, 작가는 도시가 대중행동에 수월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무분별한 개발을 일침하는 작품에서 우리는 경각심을 느끼게 된다. 에드워드 버틴스키는 '회전살수'라는 작품에서 사막에서 일어난 도시 개발의 사례를 보여준다. 사막에 논을 경작하기 시작했고 그 주변에 사람이 모일 것으로 예상하고 집을 짓기 시작했으나 농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사람도 모이지 않는 곳으로 바뀌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 에드워드는 '21세기 유적'이라고 표현했다.
파블로 로페스 루스는 멕시코와 미국 국경에 주목한 '국경' 연작으로 사회적 붕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 프로젝트는 악명 높은 그 국경에서 개인의 희망과 절망이 담긴 서사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뒤로 물러나 '벽'이라는 물리적인 구조물에 가로막힌 미국과 멕시코 양쪽을 프레임에 담았다. 이 사진에는 양국 사이에 정치적인 표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굽이치는 산악 지형만 보인다. 국경선에서 멀리 물러나서 보면 어느 쪽 영토에서 바라보는 장면인지 구분하기는 거의 불가능한데, 이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더한 구조물이 자연 앞에서 얼마나 무의미한지 보여준다.
파블로 로페스 루스, '샌디에이고-티후아나 XI, 미국-멕시코 국경', ‘국경’ 연작, 2015 © Pablo López Luz |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그 다음은 뭐지?'라고 묻는다. 4차산업혁명이 시대가 왔고 인간 대신 로봇이 일을 하고, 인공지능 기술로 밖에 나와 있어도 가스 불을 끌 수 있다. 사진가들은 그리 머지 않은 미래 세상의 징후를 포착했다. 사진 작가이자 우주 비행사 훈련을 받고 있는 미하엘 나야르는 '빠.르.게'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큰 천문 전파 망원경을 담았다. 이는 2016년에 중국이 '구경 500m 구형 망원경'을 외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남부 산악 지역에 만들었다.
이 망원경은 컴퓨터로 조작해 우주의 여러 지점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만든 목적은 펄서(주기적으로 세기가 변하는 전파를 방출하는 별)나 블랙홀, 중력파처럼 멀리서 오는 전파를 잡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우주의 통신 신호를 감지하는 것은 인간이게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도달하게 한다. 작가는 외계 통신 신호가 처음으로 이 망원경 접시에 닿아서 전 세계로 중계되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윌리엄은 전시를 기획할 때 특정 메시지를 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문명'에 대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해석도 없었으며, 포터그래퍼가 렌즈에 담은 상황에 초점을 맞췄다고 정리했다.
그는 "정해놓은 긍정과 부정은 없었다. 하지만 제임스 마틴이 '인류는 스스로 자멸할 수 있다'고 말했듯 많은 지식인들이 갖는 우려 상황이 있다. 정치적 문제도 있고, 온난화 문제 혹은 유전자 변형 기술이 너무나 발달해서 많은 이들이 우려할 것"이라며 "사진 작가들도 현대의 문명이라는 것에 캡처하는 과정에서 그런 내용이 들어가 있을 거다"라고 부연했다.
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