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보람 기자 =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승소로 끝나기 까지는 13년8개월이 걸렸다.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의 청년'이 대한해협을 건너 낯선 일본땅에서 강제징용에 시달렸지만, 일본으로부터 국권을 되찾은 '내 나라 대한민국'이 억울함을 풀어주는 데 걸린 시간도 짧지만은 않았다.
소송제기에서 대법원 최종 판결까지 걸린 시간은 일제 강점기(35년)의 3분의1에 달할만큼 지루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 4명 가운데 3은 '승소' 소식을 듣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일제 강재징용 피해자 고(故) 여운택 씨 등 4명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피해자들에게 가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4) 씨가 소송 제기 13년 만에 대법원의 최종 승소 판결을 받은 뒤 환히 웃고 있으며 서울 서초동 대법원을 나서고 있다. 2018.10.30. adelante@newspim.com |
여 씨를 비롯한 고 신천수·고 김규식·이춘식 씨 등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은 2005년 2월 28일 서울중앙지법에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여씨와 신씨 등 2명이 일본에서 1997년 같은 기업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2003년 10월 일본 사법부로부터 최종 패소 판결을 선고받은지 1년 4개월여 만이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우리나라에서도 패배의 쓴 맛을 봐야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소송 제기 3년여 만인 2008년 4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일본판결이 우리나라에서 효력이 인정되고 신 일본제철이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승계했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였다.
서울고등법원도 이듬해 7월 피해자들의 항소를 기각하며 1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달랐다.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 이후 3년여 만인 2012년 5월 "일본 판결은 헌법취지에 어긋나고 신 일본제철은 구 일본제철을 승계한 기업"이라고 판단,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분위기가 반전됐다. 서울고법은 대법원 판단의 취지를 따라 신일철주금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신일철주금은 이같은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재상고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사건은 고법 판결 이후 대법원에서 선고기일이 좀처럼 잡히지 않으면서 지루하게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5월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을 단장으로 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은 당시 양승태 사법부가 이번 소송에 부적절하게 개입한 정황을 의심할 만한 법원행정처 작성 문건을 공개해 파장이 일었다.
검찰 등에 따르면 당시 법원행정처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의도대로 일본과의 외교 문제 등을 고려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민사소송을 고의로 지연시키는 데 부적절하게 관여하고 이를 대가로 법관해외파견 등을 외교부로부터 받아낸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은 7월 이번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소송은 긴 싸움 끝에 결국 원고 승소로 끝났지만 손해배상을 청구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 가운데 3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생존자는 이춘식 씨 한 명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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