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구윤모 기자 = # 서울의 한 고시원에 거주하는 A씨(66·남)는 고민이 깊다.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며 월세를 내고 생활해왔지만 최근 허리통증이 심해져 일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결혼을 하지 못한 A씨는 의지할 가족이 없다. 18만원의 고시원 월세도 부담으로 다가온다. A씨는 “차라리 일이라도 하면 좋은데 몸이 안 좋아 좁고 어두운 방에 하루종일 누워만 있다”면서 “병원에 가고 싶지만 생활비도 부족해 포기한 상태”라며 한숨을 쉬었다.
# 대전에서 ‘공무원’의 꿈을 안고 서울 노량진으로 올라온 B씨(28·여)는 학원 근처 고시원에 입주했다. 최소한의 시설만 갖춘 월세 22만원의 방이다. 아늑한 고향집을 떠난 B씨에게 고시원 생활은 험난하기만 하다. 아침부터 밤까지 학원에서 공부한 후 지친 B씨를 맞이한 창문 없는 고시원 방은 그를 더 힘들게 했다. B씨는 “창문도 없는 좁은 방에서 생활하다 보니 우울증에 걸렸다”며 “하루 빨리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이곳을 나가고 싶을 뿐”이라고 전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 청계천 인근의 한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는 건물 3층에서 시작돼 3층 7명이 숨졌다. 이날 환자복을 입은 고시원 거주자가 물품을 챙겨 나오고 있다. 2018.11.09 leehs@newspim.com |
◆열악한 주거 환경...“감옥같은 삶”
‘지옥고’라는 말이 있다.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등 열악한 주거환경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곳이 고시원이다. 고시원은 보통 보증금이 없고 임대료가 저렴하다. 일반 원룸과 달리 별도로 부담해야 하는 공과금이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고 최소한의 식사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이렇다 보니 적은 비용으로 주거를 해결하려는 ‘주거취약계층’이 고시원에 몰린다. 최근 주거환경을 개선한 ‘고시텔’ 등의 시설이 확대되고 있지만 이들이 주로 찾는 곳은 전통적 개념의 저렴한 고시원이다.
고시원의 주거환경은 열악하다. 거주자들은 ‘감옥’에 비유한다. 자기 몸 하나 누이기 힘든 좁은 공간, 식사·배변 등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을 모르는 사람들과 공유해야 하는 어려움은 흡사 감옥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주거취약계층의 ‘주거 공간’...급증하는 고시원 인구
고시원은 과거 사법시험 등을 준비하던 고시생들이 최소한의 의식주만 해결하며 공부를 하기 위해 살면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 주로 대학 주변이나 노량진·신림동 같은 고시학원 밀집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사법고시 등이 폐지되고 ‘고시’의 개념이 옅어지면서 고시원을 찾는 사람들의 부류도 달라졌다. 지속적인 경제불황과 취업난, 1인 가구가 증가하며 대도시 내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주거지를 찾는 공시생이나 취업준비생, 특히 일용직 근로자들이 고시원으로 몰렸다.
국토교통부가 10월 발표한 ‘주택이외의 거처 주거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고시원·고시텔에 거주하는 가구는 15만1553명에 달한다. 전국의 고시원·고시텔 등록건수도 2004년 3910건에서 2016년 1만1800건으로 3배가량 늘었다. 이중 80.2%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거주자들의 평균연령은 34.6세로, 청년부터 중·장년층까지 고루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고시원 거주자들의 경제활동비율이 73.7%에 달했다. 고시원이 고시생들의 ‘공부 공간’에서 주거취약계층의 ‘주거 공간’으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하는 수치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 청계천 인근의 한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고시원 건물에 화재의 흔적이 남아 있다. 2018.11.09 leehs@newspim.com |
◆참혹했던 종로 고시원 화재...사회적 약자들의 안타까운 죽음
지난 9일 발생한 종로 고시원 화재 사망자들도 일용직 근로자, 기초생활수급자 등 주거취약계층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화재가 발생한 국일고시원은 월세가 27만~38만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룸이나 오피스텔 등에 비하면 훨씬 저렴한 비용이다. 특히 서울 중심가에 위치해 있어 인력 사무소나 일터가 많은 것도 큰 이점이었다. 이들이 생활비를 아끼며 삶을 영위해갈 수 있는 안식처였다.
화재가 발생한 이날도 고된 노동에 지쳐 겨우 침대 하나 있는 좁은 방에서 단잠을 자다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고가 없고 가족과 떨어져 지낸데다가, 화마로 시신 훼손도 심해 경찰이 신원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무거운 삶의 무게를 견디던 이들의 삶은 끝까지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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